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는 누군가 Mar 07. 2018

고성향교

공룡 고장의 인문학

인문학을 이해하지 않고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은 척박해질 수밖에 없다. 모든 향교에서 제사를 지내면서 모시는 첫 번째 인물은 공자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라를 다스릴 때는 일을 신중하게 처리하고 백성들의 신뢰를 얻어야 하며, 씀씀이를 절약하고 사람들을 사랑해야 하며, 백성들을 동원할 경우에는 때를 가려서 해야 한다." 


공룡의 나라 고성군에도 옛사람들이 배우던 공간 향교가 있다. 고성향교는 경상남도 시도 유형문화재 제219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건립은 1398(태조 7)에 되었으며 경상남도 고성군 고성읍 교사리 270-1에 자리하고 있다. 

고성향교의 현존하는 건물은 대성전·명륜당·동재·서재·동무(東廡)·서무(西廡)·풍화로(風化樓)·수복청(守僕廳)·전사청·내삼문(內三門) 이 있고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07년 현령 정여린(鄭如麟)과 도감(都監) 이현(李顯) 등에 의해 중건되었다. 1726년(영조 2) 고성군이 통영군과 합쳐짐에 따라 향교도 통영군 선도면 죽림리로 이건 되었으며, 1876년 군이 환원되면서 현재의 위치로 다시 이건 하고, 1984년에 보수하였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천명을 알지 못하면 군자가 될 수 없고, 예를 알지 못하면 세상에 당당히 나설 수 없으며, 말하는 법을 알지 못하면 사람의 진면목을 알 수가 없다." 


고성향교의 입구는 풍화루가 세워져 있는데 입구에서 가장 먼저 사람을 맞이해주는데 풍화루는 3칸으로 된 2층 누각에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다. 풍화루는 학교의 정문 역할을 하면서 제례를 지내는 대성전과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하여 손님을 접대하였다. 

지역마다 돌아다니다 보면 향교의 배치나 그 형태가 전학후묘라는 것을 제외하고 조금씩 지역마다 형태가 달라진다. 고성향교는 그 규모가 있는 편으로 옛날 조선시대에 고성군의 규모가 작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공자가 말한 이야기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옛날에 자긍심이 강한 사람은 엄격하고 모가 났으나 지금의 자긍심 강한 사람은 성내고 싸움이나 한다. 옛날에 어리석은 사람은 정직했으나 지금의 어리석은 자는 속이기만 할 뿐이다. 

고성향교에서는 매년 봄과 가을에 석전이 행해지고 초하루와 보름에는 삭망제를 실시하고 있다. 전국에 있는 적지 않은 향교에서는 매년 기로연 행사를 하는데 기로연은 조선시대 기로소에 등록된 70세 이상 원로 문신들을 위로하고 공경하기 위해 조정에서 베풀었는데 그 의미를 지방에서 행하는 것이다. 이는 유교문화와 경로효친 사상을 계승 발전시키는 데 있다. 


오직 최상급의 지혜로운 사람과 최하급의 어리석은 사람만은 바뀌지 않는다. - 공자

매거진의 이전글 향교 인문학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