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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Mar 22. 2020

빛날 시간

자신을 믿고 노력했던 곤양향교

SNS가 빠르게 정보를 전달하면서 정확하지 않은 사실이 빠르게 확산이 된다. 그렇지만 세상의 이치는 일들이 끝나 봐야 진위가 가려지는 일들이 너무나 많다. 어쩔 수 없는 순간은 있지만 꾸준함으로 많들어가는 노력이 빛날 순간은 꼭 온다. 교육이나 사회의 시스템이 예상 가능한 환경에서 운영될 때는 좀처럼 새로운 기회나 진보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배움을 통해 관직으로 나아가려는 수많은 선비들이 향교를 거쳐갔다. 

곤양향교가 자리한 곤양은 지리적으로 중요한 곳이었다.  사천의 옛 이름으로도 알려진 곤양은 임진왜란 당시 권율이 주둔하던 곳이었다. 이곳에서 주둔한 이유는 호남을 잃으면 조선이라는 나라를 통째로 일본에게 넘길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순신이 백의종군하며 삼도수군통제사에서 물러났을 때 원균은 조선수군의 모든 것을 무너트렸다. 

원래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 세워져 있는 곤양의 곤양향교의 현존하는 건물로 대성전과 7칸의 명륜당, 전직사(殿直舍)·동재(東齋)·풍화로·내삼문(內三門)·외삼문(外三門) 등이 남아 있는 상태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약 60여 년 전에 퇴계 이황이 이곳을 찾아오기도 했었다. 임진왜란은 어떻게 보면 여당과 야당처럼 동인과 서인으로 갈라진 것으로 인해 피해가 컸다. 국가의 위기에서 네 편과 내편은 의미가 없다. 함께 힘을 합쳐야 할 때 잘잘못을 논하는 것은 군자의 가르침이 아니었다. 

시간이 무척이나 여유가 있는 듯 느리게 가고 있다. 유독 하루하루가 길게 느껴지기도 한다. 원래 사람들이 거의 없거나 별로 없는 곳을 다니는 것이 일상이라 별다른 변화가 없는 것처럼 생각되지만 다른 사람들은 바뀐 일상이 무척이나 낯설다고 한다. 

곤양향교의 오래된 건축물에서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지만 낡았다기보다 오래됨을 보게 된다. 스스로도 후회하지 않으려면 늘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인생에는 때가 있는데 준비하지 않은 사람에게 의미 있는 대안은 찾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코로나 19가 갑자기 찾아온 것처럼 보이지만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인생 변화의 흐름의 한 사건일지도 모른다. 

곤양향교의 주변으로는 녹색의 나뭇잎들이 봄이 왔음을 알리고 있었다. 임진왜란 당시 곤양(昆陽:사천)에 주둔하고 있던 권율이 원균을 불러다 곤장으로 벌한 뒤 직접 군사를 거느리고 나가 싸우도록 했다. 곤장을 맞고 화가 난 원균은 전략부재인 상태에서 부산으로 향하며 일본군의 계략에 빠져 모든 힘을 빼게 된다. 전선이 모두 흐트러진 상태에서 섬을 돌아 가까스로 칠천량(漆川梁)에 도착, 포구 안으로 들어갔는데 다음날 피아간의 총통과 조총 불화살이 포구를 뒤덮은 가운데 칠천량 앞바다가 불바다를 이루며 무적을 자랑하던 조선 수군이 처참하게 무너졌다. 

빛날 시간을 가지는 사람이 있고 저물어가는 시간이 강제로 부여가 되는 사람이 있다. 향교의 교육은 단계를 넘어서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앞과 뒤가 이어지도록 했었다. 짧은 봄볕의 따스함만으로 나무에 꽃이 피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봄의 꽃은 겨울의 기나긴 시간을 준비한 다음에 비로소 피는 것이다. 준비에는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하다. 묘이수자 수이실자(苗而秀者 秀而實者) 라는 공자의 뜻은 싹이 돋아 오르면 꽃을 생각하며 손을 멈추지 말고, 꽃이 피면 열매를 생각하며 손을 멈추지 말라는 의미다. 어찌 보면 지금은 생각하지 못한 물결이 강제적으로 홀로의 시간을 부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천 곤양향교는 매달 음력 초하루와 보름이면 삭망제(朔望祭)를 올리고, 봄과 가을에는 석전제(釋奠祭)를 봉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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