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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Aug 28. 2019

박문수 급제하다.

안성 죽산면과 죽산 향교

제선왕이 춘추전국시대에 통일왕국의 패자가 되기 위해 맹자에게 물음을 청했다. 맹자는 그 나라의 상황을 잘 알기에 이렇게 말한다. "지금 왕의 은혜가 금수에게 미칠 정도로 충분하면서도 그 공적이 백성들에게 미치지 않는 것은 유독 무슨 까닭입니까? 그렇게 볼 때 깃털 하나를 들지 않는 것은 힘을 쓰지 않기 때문이고, 수레에 실은 땔감 더미를 보지 않는 것은 '시력'을 쓰지 않기 때문이며, 백성들이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것은 은혜를 베풀지 않기 때문이다." 

안성시내에서 떨어져 있지만 죽산면은 많은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는 곳이다. 어사의 대명사로 불리는 박문수도 죽산면에 와서 기도를 드린 뒤에 장원급제를 하여 드디어 벼슬길로 나아갈 수 있었고 백성들을 살피는 암행어사로 활동할 수 있었다. 서른세 살의 나이에 과거에 합격하고 4년 후에 암행어사에 발탁이 된다. 암행어사는 왕이 직접 임명하는 임명직이었다. 그만큼 중요하게 생각했던 벼슬이다. 

안성 죽산면에 자리한 죽산 향교는 인터넷에 나오는 정보와 직접 와서 온 정보는 좀 다르다. 이곳에는 죽산 향교가 태종 13(1413)에 창건하였다고 적혀 있다. 그렇지만 인터넷 백과에는 1533년(중종 28)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그 밖에 자세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으며, 1972년에 원장(垣墻)을 신축하였다고 나온다. 

죽산 향교의 이름 죽산은 대나무로 만든 산이라는 그 이름을 그대로 사용했다. 이곳에 모셔진 대표적인 인물 맹자는 모든 것이 저울에 달아보아야 가볍고 무거운 것을 알 수 있고, 자로 재보아야 길고 짧은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어떤 사물이든 그럴진대 사람의 마음은 더욱 그러하다고 말한다. 

죽산 향교에 현존하는 건물로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대성전, 정면 3칸, 측면 2칸의 명륜당, 동재(東齋)·서재(西齋)·내삼문(內三門) 등이 있다. 

죽산 향교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뒤로 돌아서 좁은 문을 통해서 들어가야 한다. 고개를 낮추고 안으로 들어가 본다. 고정적인 생업이 없이 항상적인 마음을 지니는 것은 오직 선비만이 할 수 있다고 한다. 일반 백성의 경우 고정적인 생업이 없으면 그로 인해 항상적인 마음도 없어진다. 그러면 방탕하고 편벽되고 간사해진다. 그런 후에 죄에 빠지는 데 이르게 된다. 그것을 쫓아 형벌에 처한다면 그것은 백성들을 그물질해서 잡는 것이라고 했다. 

강학하는 공간인 명륜당이 생각보다 소박하다. 죽산 향교의 건물들은 크기가 소박하면서도 작은 건물이다. 죽산면에 와서 빌은 후에 암행어사가 되었던 박문수가 삼남 지방에서 목격한 굶주린 백성들의 실태를 영조에게 낱낱이 고했다. 영조가 보고 받은 내용은 믿을 수가 없을 정도로 끔찍했다고 한다. 박문수는 해결방안으로 자신을 포함하여 대신들의 녹봉을 감해서 백성들을 구하자고 주장하였다. 그러자 대신들은 박문수를 비난하기 시작하였다. 정신 나간 사람의 잠꼬대 같은 소리라고 말이다. 

죽산 향교의 배움은 고요한 가운데 천천히 흘러 다니는 느낌이다. 박문수는 암행어사에서 관찰사의 자리에 오른다. 함경도 지방에서 물난리가 나서 백성들이 먹을거리가 없어 당장 죽게 생기자. 박문수는 조정의 명령을 기다리지 않고 곡식을 배에 실어 보낸다. 관료들이 박문수에게 문책을 당할 수도 있다고 말하자 박문수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문책을 당하는 것은 작은 문제요. 굶주린 백성을 구하는 것은 큰 문제다."

옛날에는 소금이라는 것인 상당한 가치를 지닌 것이었다. 어장과 염전에 부과되는 미역바위(울산 북구)의 어염세는 상당한 부담이었는데 개인 가문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열 두 개의 미역바위를 전부 국가로 환수하고 백성들에게 부과되는 군포를 대신해버렸다. 그리고 양반이나 백성 모두 똑같이 세금을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론은 박문수를 가만히 둘 수가 없었다. 백성들을 구한다는 명목으로 받은 돈 수만 냥을 횡령했다고 하면서 감옥에 갇히게 한다. 영조는 한 달만에 박문수를 풀어주고 이 같은 상소를 올린 홍계희를 파직시킨다. 

맹자에게 조언을 구했던 왕에게 맹자는 지금은 백성들의 생업을 제정해 주되 위로는 부모를 섬기기에 부족하고 아래로는 처자를 먹여 살리기에 부족하여, 풍년에는 내내 고생하고 흉년에는 죽음을 면하지 못한 현실을 보라고 한다. 죽음에서 자신을 건져 낼 여유조차 없는데 어느 겨를에 예의를 익히겠는가. 죽산 향교는 그냥 쇠퇴한 조선의 유교 사회를 보여 주는 곳이 아니다.   ‘과거는 현재의 거울’이라고 하였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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