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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Feb 12. 2019

안성향교

타고난 본성은 서로 비슷하지만, 습성에 따라 서로 멀어지게 된다. 

요즘에는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운동을 할 때 힘을 주어 어떤 물체를 가격할 때 초반에는 똑같은 시점에서 출발하지만 끝의 결과는 엄청나게 많은 차이가 난다. 그래서 자신을 다스리고 계속 연습을 하는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계속 가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같은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노력을 해야 한다. 

조금은 독특하게 지어진 건물이 있는 안성향교다. 안성향교에는 대성전·명륜당·동재(東齋)·서재(西齋)·내삼문(內三門)·외삼문(外三門)·풍화루(風化樓)가 보존되고 있다. 향교에서 향의 의미는 가장 밑에 있는 하급 행정구역을 의미한다. 즉 가장 밑에까지 교육을 하기 위해 교육기관을 만든 것이 향교이니 의미가 있다. 

안성향교로 가는 길에는 굴다리를 지나서 올라오면 고목이 나오고 그 앞에 안성향교를 상징하는 풍화루가 나온다. 향은 부곡과 더불어 농업생산에 치중하였으며 국가에 대하여는 공과(公課)·공역(公役)을 부담하였고, 호장(戶長) 등 토착 관리에 의하여 통제되는 곳이기도 했다. 향교의 향은 좋은 의미라고 볼 수 있지만 향인(鄕人)은 소(所)·부곡(部曲) 주민과 같이 일반적인 양민과 달라서 그 신분이 노비·천민에 유사한 특수한 열등 계급의 지위에 있기에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경우가 많았다. 

향교는 집안에 따라 차이가 있기도 했지만 평등한 교육을 지향하는 공간이기도 했다. 안성맞춤이라는 말로 대표되는 안성시의 안성향교에서는 적지 않은 인물들이 나왔을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지금도 광역시나 특례시로 승격되는 것에 대해 관심이 많은 것은 그만큼의 혜택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명학소를 충순현(忠順縣)으로 승격시켜 현령(縣令)과 현위(縣尉)를 파견하고, 난민을 위무(慰撫)하게 하는 등 회유책을 썼던 망이 망소이의 난 역시 행정구역의 승격을 위한 것도 있었다. 그러나 특수행정구역인 소(所)에서 일어났다는 점에서 일반 농민반란과 구별된다. 안성향교에서 출발하는 산행은 비봉산을 등산하는 코스로 "아니 온 듯 다녀가소서~"의 길을 걸어보는 구간이다. 

향교에서 배움에 학문을 널리 배우고 예로써 단속을 하면, 또한 도리에 어긋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안성향교는 1533년(중종 28)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그 뒤 중건하였으며, 1969년에 보수하였다. 

안성시에 가서 안성에 거주하는 분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안성이라는 곳이 주변의 격하게 성장하는 곳과의 다른 점과 안성시만의 매력을 동시에 들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안성시는 무언가 에너지가 축적된 곳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아파트를 바라보는 곳에 남겨져 있는 안성향교는 배움과 동시에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지혜로운 사람은 미혹되지 않고, 인한 사람은 근심하지 않으며, 용기 있는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 공자


지렛대 원리라는 것은 일반적인 성인이라면 대부분 많이 알 고 있다. 작은 힘으로도 큰 것을 들어 올릴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작은 힘에 약간이라도 문제가 있다면 들어 올렸을 때 큰 차이가 난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만의 가치를 가진 것은 오래된 것들의 힘이다. 안성향교는 500여 년의 힘을 가진 그런 예스러운 공간이다. 


안성향교(安城鄕校) :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27호

경기 안성시 항교길 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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