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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Mar 06. 2018

불놀이

제주 들불축제

이 글은 기사 버전과 조금은 다른 콘셉트이다. 기사는 팩트만 전달하면 되지만 사적인 이야기는 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불놀이를 해본 적은 있다. 그러나 많은 것을 태워본 적은 없다. 가장 아끼는 이가 말하기를 불놀이를 조심하라는 소리를 듣고 그냥 무대에서 사진 찍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하루 종일 조금은 힘들기는 했다. 들불놀이가 그냥 허허벌판 같은 곳에 솟아난 오름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제주도의 속살을 맛보기 힘든 지리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그 흔한 렌터카도 없는 지경이다. 


들불이 본격적으로 지펴질 오름을 만만하게 보았다가 올라가면서 헉... 이런 소리가 절로 나온다. 게다가 원래 산행을 하기 위한 공간이 아니라서 짚과 비슷한 것으로 오름길을 조성해 놓았는데 등산화가 아니어서 그런지 미끄럽고 발목 아프고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오름도 정상이 아닌 정상이라고 주변의 풍광이 한눈에 들어온다. 축제 장소인 새별오름의 높이는 119m, 둘레 2713m 규모로 들불이 실제 타는 면적은 오름의 절반이 살짝 넘는 수준이지만 그 규모는 전국 최대라 볼 수 있다.

오름의 정상에 올라서자 주변의 풍광이 한눈에 들어왔다. 멀리 한라산부터 저 끝 바다까지 보일 정도로 명당이라고 할 수 있을 위치였다. 이곳에서 제주 들불축제를 하는 이유를 조금은 알 수 있었다.

저곳에 필자도 소원지를 적었다. 그 내용은 너무나 사적이라서 비밀이긴 하지만 뭐 한해의 소원을 빈다는 것에 대해서는 분명한 사실이니 말이다. 이날 축제의 백미는 더 둥글게 보이는 달집을 태우는 데 있었다. 

예산 때문인지 몰라도 그 흔한 축제 상품권 하나 받지 못하고 두시간여를 축제장에서 헝그리 모드를 취해야 했었다. 밥은 먹여주지만 간식을 주지 않는다라는 느낌이랄까. 그렇지만 제주도민들을 위한 축제라서 그런지 몰라도 먹을거리는 뒤편에 참 많은 편이라서 말만 잘한다면 같이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조금의 위안이었다. 

제주도에서 많이 잡히는 소라의 향은 지금까지 입안에 잔향이 남을 정도로 그 맛이 좋다. 쫄깃하면서도 그 안에 베인 향이 입안으로 넘어가면서 제주의 맛을 선사한다. 축제장 곳곳에서 이 소라는 흔하디 흔한 해산물로 어디서나 볼 수 있다. 

육지에서 먹으려면 적지 않은 가격을 지불해야 하지만 이곳에서는 말만 잘하면 돈을 내지 않고도 먹을 수 있다. 축제라고는 하지만 실상 이 축제는 도민들의 마을 축제 형식을 띄고 있어서 그런 듯하다. 마을 사람들의 축제에 보통 돈을 내지 않으니 말이다. 

제주의 식당을 가면 흔하게 볼 수 있는 가리비와 해물들이 그득하다. 제주도에서 유명한 흑돼지를 비롯하여 맛있는 것들이 철판에서 지글지글 익어가고 있다. 


옛날부터 가장 재미있는 놀이가 불놀이라고 했던가. 불놀이는 남녀노소를 불구하고 안전하다면 재미있게 즐길 수 있지만 위험이 따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제한된 환경에서 관리가 가능한 상태에서 진행해야 한다. 

이미 미디어 파사드는 도시의 색채를 보여주고 예술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하지만 올해 제주 들불축제에서는 실제 오름에다 표현해서인지 조금은 색다르고 예술적인 느낌이 들었다. 이날 달집에는 관람객들의 소망을 담은 소원지를 달아놓았는데 이는 불이 탈 때 같이 타며 행운을 빌어준다고 한다. 필자 역시 가장 원하는 소원 하나를 적어서 그곳에 달아 놓았다.

이날의 들불축제를 보기 위해 적지 않은 외국인이 찾아와 좌석을 채우고 있었다. 국적도 다양했는데 일본, 중국 등을 비롯하여 호주, 러시아, 간혹 유럽인들도 보였다. 모두들 이런 형태의 축제가 특이했는지 흥미롭게 바라보면서 참여하고 있었다.

제주도의 겨울 최대 축제이기도 하지만 실제 이곳에 와보면 제주도민들의 화합 대잔치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불을 대규모로 태우게 되면 미세먼지라던가 갈대 속의 수많은 생물들이 사라질 수도 있다. 하지만 제주 들불축제의 원래 의미를 되살려 제주 고유의 전통 민속을 현대적 감각에 맞게 재현했다는 데 더 큰 비중을 두어야 할 듯하다. 지금도 전국에는 마을 단위별로 정월 대보름에는 달집 태우기를 하고 있다.

불꽃놀이와 불놀이를 보고 있자니 놀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주요한이 일제강점기에 발표한 불놀이라는 시가 연상된다. 4월 초파일 대동강에서 벌어지는 불놀이를 보며 죽은 애인을 그리워하던 젊은이가 죽음의 유혹에 휩싸이다가 삶의 의지를 회복한다는 이야기인데 살고 있는 사람의 강한 의지가 돋보인다. 제주 들불축제는 제주 도민뿐이 아니라 이곳을 찾은 모든 사람에게 그런 에너지를 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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