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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Mar 05. 2018

서피랑

통영의 아름다운 골목길

오래된 것은 안 좋은 것이라는 인식이 이 땅에 자리 잡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대한민국이 출범하고 나서 개발 우선주의 정책이 주도되면서부터다. 오래된 것은 깨끗이 밀어내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 가치를 만들어내고 그 차액을 가져가는 개발방식은 수십 년간 반복이 되어왔다. 삶의 흔적이 쌓이다 보면 그것이 좋은 것이던 좋지 않은 것이 든 간에 무형의 가치를 가지게 된다. 십수 년 전부터 오래되고 인적이 드문 골목길을 새롭게 바꾸는 벽화거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고향이 그립지 않은 사람은 없다. 고향은 삶의 기초다. 특히 문학하는 사람은 어린 시절의 추억이 밑천이 된다."

통영의 명소이며 벽화거리로 조성된 곳은 서피랑 거리라고 하는데 이곳에는 주변으로 벽화가 그려져 있고 특색 있는 통영만의 문화와 박경리를 비롯하여 문학인들의 흔적이 남겨져 있다. 이른 아침에 걷는 통영 거리는 봄냄새를 맡기에 좋은 곳이다. 

보통 공작소라고 하면 기계 같은 것을 만든다고 생각하지만 최근에는 가죽공예부터 종이, 각종 예술작품과 데코 장식을 만드는 곳도 공작소라고 부른다. 서피랑 공작소는 물질적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글을 쓰는 공간을 의미하며 자신을 바꾸고 나아가서는 타인의 공감을 읽고 마음을 쓸 수 있는 글을 만드는 공간을 말한다. 

생각보다 좋은 문구들이 이곳저곳에 많이 쓰여 있다. "방향을 망설이게 되더라도 넓다는 것은 해방이며 깊다는 것은 인생의 진수와 가까워진다는 뜻입니다." 좋은 글이나 문구를 읽는다는 것은 사람의 삶을 풍족함을 만들어주며 그 사람을 조금씩 완성해준다. 

"삶 자체가 치열한 것이기에 삶을 다루는 작가정신이 치열해야만 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며 결코 문제를 회피해서도 안 될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을 위해서도 삶의 낭비가 아닐까요?" 


오래되고 낙후된 곳이라고 해서 모두 새롭게 지워버린다면 지금의 이런 서피랑 골목길은 없을 것이고 사람들의 흔적을 발견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삶에서 과거가 모두 떳떳하다고 볼 수 있을까. 떳떳하지 못하는 과거라도 품을 때 변화할 수 있고 단절되지 않는다. 

데크길로 잘 만들어져 있어서 이곳저곳을 마치 미로처럼 걸어볼 수 있게 되어 있다. 서피랑은 통영의 집창촌이 있었던 과거를 가지고 있던 곳이지만 지금은 그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서피랑 99계단을 시작으로 박경리 어록을 만나고 5옥타브까지 낼 수 있는 피아노 계단과 정상 부근에 있는 후박나무가 멋들어져 보인다. 

서호 벼락당 언덕은 재해위험지의 불모지였으나 꽃동산 등을 조성하고 2015년 희망마을 만들기 공모사업과 정원 공모사업으로 다양한 것들이 만들어졌다. 벽화와 바다의 만남이 가능한 서피랑 마을의 풍광은 새로운 관광거점으로 자리 잡게 만들어주고 있다. 


소리를 하는 사람들은 한(恨)에 묻히지 말고 고것을 넘어서라는 소리를 한다고 한다. 글을 쓰는 사람들은 치열한 삶을 오롯이 감당하면서 그것을 넘어서는 글을 써내야 한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갈 수 없는 길이지만 한 번 그 길에 들어서면 그 매력으로 인해 밋밋한 다른 길이 보이지 않는다. 


통영의 서피랑은 새로운 느낌을 주는 곳이기도 하지만 피아노 5계단에서 울려 퍼지는 삶의 소리가 가슴을 울리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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