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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Mar 29. 2018

송광사

마음을 담을 수 있는 공간

전라북도 완주라는 곳은 면적이 상당히 큰 지자체이기도 하지만 아직 알려진 것이 많지 않은 여행지이기도 하다. 지금까지는 잘 알지 못했던 완주라는 곳을 조금 더 알고 싶어 져서 훌쩍 떠나 보았다. 가장 먼저 소개하고 싶은 곳은 한적한 분위기가 좋은 송광사로 완주의 첫인상에서 백 퍼센트에 가까운 만족도를 주는 곳이었다. 연꽃이 활짝 만개하는 여름에 가면 더 좋았겠지만 만물이 생동하는 봄에 가도 좋은 곳이다. 


봄이 되면 여지없이 새 생명의 빛을 발하면서 봄이 왔음을 알리는 것과 같이 여행을 떠난 사람은 또다시 길을 떠나게 된다. 여행은 술보다 더 중독성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혼자 떠나는 여행이 외롭지 않냐고 묻는다면 뭐 딱히 그렇지는 않다. 외로움이란 원래 관계 속에서 생기기 때문이다. 여행을 떠나면 조금은 겸손해지는 방법을 조금씩 배운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金山寺)의 말사인 완주의 송광사는 867년(경문왕 7)에 체징(體澄)이 창건한 사찰이다. 송광사의 첫인상은 정원과 같은 사찰이라고 해야 하나. 

사찰과 정자가 같이 이렇게 어우러져 있는 것은 좀처럼 보기 힘든 풍광이다. 마치 조선시대 선비들이 이곳에서 머물면서 불교와 유학 공부를 같이 했을 것 같다는 인상을 받게 한다. 우리는 얼마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빈곤함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사실 필요한 것은 빈곤함이 아닌 조화로움이었다. 

사찰에 오면 항상 느끼는 것은 소유에 대한 집착이 잠시 내 곁을 떠난다는 것이다. 사찰에서는 그다지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아 그런지 소유의 집착들이 손가락 사이로 모래가 흘러내리는 것 같이 사르르 없어져 버린다. 

송광사는 상당히 넓은 부지에 대웅전을 비롯하여 지장전·오백나한전·약사전·관음전·삼성각·십자각·천왕문·금강문·일주문 등이 자리하고 있는데 그 사이사이가 넓어서 매우 여유 있어 보인다. 보통 사찰은 지세를 이용하여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아서 시선의 변화가 있는데 이곳은 그냥 빈 공간의 한적함과 여유로움이 첫인상으로 다가왔다. 

송광사는 물과 연관이 깊은 곳이기도 하다. 폐허화되었던 것을 고려 중기의 고승 보조국사(普照國師)가 이곳을 지나다가 영천(靈泉)의 물을 마신 뒤, 영천으로 인하여 뒷날에 큰 절을 세울 수 있는 곳이라 판단하여 오늘날까지 이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 목이 무척이나 말랐는데 송광사의 물을 시원하게 마셔보니 사찰을 다시 중창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종루 뒤에 있는 대웅전 안에는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41호로 지정된 석가여래좌상이 봉안되어 있으며, 벽과 천장에는 선이 매우 활달하여 생동감을 가지게 하는 19세기 작품 비천(飛天)이 그려져 있다. 조금 이른 시기에 와서 완주에서 가장 유명한 벚꽃길이 조성되어 있는 송광사를 보지 못한 것이 조금 아쉬웠다. 특히 정면에 보이는 종루는 십자형 건물로 지어졌는데 일반 사찰이나 고건축에서 찾아보기 힘든 형태였다. 송광사에서는 불전사물을 아침과 저녁 예불 전에 울리는데 북은 땅 위에 사는 네 발 짐승을, 범종은 땅속 지옥에서 고통받는 모든 중생들을, 목어는 물속에 사는 생명체를, 운판은 창공을 나는 날개 달린 짐승을 위해 울린다고 한다. 

켜켜이 쌓인 시간의 사찰 송광사에서 전통이란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어떤 끈이 아닐까란 생각을 해보게 한다.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있을까. 이해할 수 없는 일은 규정을 지어놓았기 때문일 것이다. 정해진 규칙에서 벗어난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되어버린다. 일상이 지루하면 지루할수록 사찰을 돌아보면 삶의 충전 에너지를 주니 어느 곳이라도 좋으니 떠나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사천왕이 잡귀를 잡아내고 일반 중생들에게 더 큰 무게를 주지 않기 위해 사찰의 입구에서 오랜 세월을 그렇게 버텨왔다. 사천왕은 동쪽을 수호하는 이는 지국천왕(持國天王), 서쪽을 방어하는 신은 수미산 중턱 백은타(白銀埵)에 살고 있는 광목천왕(廣目天王), 북쪽을 지키는 다문천왕(多聞天王), 남방을 지키는 증장천왕(增長天王)은 수미산 남쪽의 유리타(瑠璃埵)에 살고 있다. 보통 이 천왕상들은 불거져 나온 부릅뜬 눈, 잔뜩 추켜올린 검은 눈썹, 크게 벌어진 빨간 입 등 두려움을 주는 얼굴을 하고 있다. 

오늘 하루의 정해진 시간은 이렇게 흘러간다. 아날로그시계나 디지털시계나 모두 에너지가 주어지면 그걸 시간을 표시하는 데 사용한다. 그러고 보면 시간과 에너지는 서로 등가교환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배꼽시계가 식사시간이 언제인지 알려주기도 하지만 사람은 정확한 시간을 알지는 못한다. 우리는 시간을 알기 위해 에너지가 필요하다. 필자는 오늘 그 에너지를 완주의 한적한 사찰 송광사에서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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