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 있는 사람은 곪지 않는다.
의식 없이 살아도 좋기는 하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생각이 고착화되며 일명 꼰대가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레디 플레이어 원이라는 영화를 보면서 스티븐 스필버그는 여전히 소년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생각하는 머리 근육이 발달되지 않으면 책을 읽는 것이 힘들어지고 고통스럽다. 읽어도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뇌는 그걸 거부하기 때문에 졸음이 오는 경우가 많다. 영화를 볼 때 아무 생각 없이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만 생각을 가지고 그 속으로 들어가면 책을 읽는 것만큼이나 효과가 있을 때가 있다.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은 어떻게 보면 유치할 수 있는 내용을 의미 있게 바꾸어 놓았다. 여성·빈민·흑인·이민자로 구성된 드림팀이 자본 독식하는 체제에 맞서는 내용을 담고 있어서 현실 속에서 만나볼 수 없는 쾌감을 전달해준다.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빈민촌에 거주하면서 딱히 할 일 없이 가상현실 게임에 빠져 사는 웨이드는 홀리데이가 설계한 오아시스에서 세 개의 이스트에그를 찾아 거지 같은 현실에서 탈출하는 것이다. 상당수가 빠져 사는 가상세계를 만들어낸 홀리데이는 오히려 아날로그 감성에 빠져 있는 사람이다. 영화 속에서 나오는 van halen jump, Take on me, Faith, Stayin alive 등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음악들이다.
현실이 더 현실적이기 때문에 가상현실도 의미가 있어질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게임에 빠져 현실을 망각하기도 한다. 모든 것이 그곳에서만 이루어지고 정작 현실에서는 비현실적으로 살아간다. 웨이드 역시 현실과 가상현실에서 모두 자본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좌절하고 희망 없이 살아가지만 오아시스에서만큼은 퍼시 빌이라는 캐릭터로 나름 인정을 받고 있다. 영화에서 가상현실은 현재 VR기반에서 그렇게 벗어나 있지는 않다. 오아시스 속에서는 그렇게 조금은 유약한 캐릭터로 등장하지만 지혜로우면서 용감한 아르 메티스를 만나 조금 더 완성이 되어간다. 혼자가 편하다는 웨이드이지만 2% 부족함을 이성이 채워준다.
뻔하디 뻔한 설정일 수 있지만 고전을 넣으면서 영화는 의지가 더해졌다. 오아시스 상에서 다양한 무기와 아이템을 개발하는 시스템 기업 IOI는 가상세계를 기반으로 현실세계 속의 노예를 양산한다. 지금의 자본주의와 비슷해 보인다. 그들을 막을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그러나 그 막강한 자본과 시스템조차 이스터에그를 발견하는 것을 사회적 약자들에게 빼앗기면서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간다. 페이스북을 창업한 마크 주커버거 역시 자본에 취해 많은 실수와 잘못을 하고 있지 않은가. 의식은 자본에 취할 때 곪아 들어가기 시작한다. 오아시스를 만든 홀리데이는 한 사람에게 부와 명예가 집중되는 것을 원치 않았지만 IOI대표 놀란은 자신이 모든 것을 지배하려고 한다.
이 영화 상당히 잘 만들어진 영화다. 가상현실이라고 해서 마치 현실에서 만나기 힘든 그런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현실과 너무나 잘 연결된 그림자 같은 세상이라고 할라나. 현실에서 즐거움을 찾기 힘들수록 게임 세계에서 만족감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현실에서 더 잘 살 수 있어야 게임도 건강하게 즐길 수 있다. 어른이 되고서도 어릴 때 하고 싶었던 것을 계속할 수 있는 사람은 용기 있는 사람이다. 현실 속에서 한계가 있더라도 자신의 꿈을 위해 조금씩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은 그 누구도 함부로 평가할 수가 없다.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방식으로 실현하는 사람의 이야기는 항상 흥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