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정성껏 살아왔던 사람들에게 전하는 이야기
삶을 대충 살아가는 사람이 있고 매번 최선의 노력을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대부분 후자들이 많은 편이긴 하지만 전자처럼 살아가는 사람들도 적지는 않다. 오래간만에 서평을 하기 위해 도착한 책 '그래, 잠시만 도망가자'는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
한 수용소 생존자의 수기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말
"나는 생존이라는 최고의 성취를 이루었다." -p 17
자신의 꿈을 직업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아마 거의 없을 듯하다. 꿈이 거창해서라던가 꿈이 이루기 힘든 것이라기보다는 꿈이 가진 기만성 때문이 아닐까. 필자는 어릴 때 누군가가 나름의 내 재능을 가지고 살아가라고 권한 사람이 없었다. 심지어 부모님들도 그렇게 말한 적이 없다. 사회는 사람들에게 꿈을 강요하는 측면이 있다. 그러다 보면 자신이 가고 싶은 방향과 전혀 다른 선택을 하게 되고 일단 아무거나 시작한다. 그리고 결국 그것에서 흥미를 잃어버리는데 거기서 오는 상실감은 생각보다 크다. 그러다 보면 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인가 봐로 귀결이 된다. 그리고 미래에 가져다줄 행복을 잃어버리게 된다.
이 순간 이 책이 온 이유는 모르겠지만 괜찮아, 잠시만 도망가자. 나중에 내가 다시 직면할 수 있을 만큼 상처에 딱지가 않을 때까지, 피가 멈출 때까지, 잠시만 숨어있고 피해있고 외면하고 도망가자.라는 말을 필자에게도 전달해주고 싶었던 것일까.
"나는 잘났어."
이건 자신감이고,
'못난 것 같지만 괜찮아."
이것이 자존감에 가깝다.
"도망쳐 도달한 곳에 낙원이란 없다." - 베르세르크
안정된 삶은 상당히 외면하기 힘든 길이다. 그런데 안정된 삶에는 그만큼의 좋은 미래는 딱히 보이지 않는다. 4 그리고 사회에서 나름 성공한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라는 말을 말이다. 필자 역시 지금도 모험을 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셈이다. 그리고 그 선택에서 적지 않은 만족감을 느끼고 있다. 그러나 다른 이들에게도 이런 모험을 권하는 것은 심리적인 폭력에 가깝다는 것을 안다. 오래전부터 안정적인 삶이라는 이면에 숨겨져 있는 미래의 불확실함을 알고 있기에 일찍이 준비를 했었다. 적지 않은 경험을 하면서 멋진 작품의 씨앗을 조금씩 쟁여두고 있는 건 사실이다.
나 역시 잘못된 선택을 하던가 나에게 맞지 않은 이성을 만난 적이 있었다. 돌이켜보면 나라는 인간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기에 나를 이해하려고 제대로 된 시도를 해보지 않았기에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나이를 이리 먹고서야 이제야 조금 나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나의 기질이나 가지고 있는 재능을 발견하기 위해 끊임없이 나에게 질문을 던지고 응시해봤던 적이 있던가. 그냥 앞으로만 나아가려고 했지 잠시 멈추어 서서 돌아본 적이 없었다. 작년 중반부터 지금까지 겨우 나를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그전에 선택은 실수의 연속이었다.
작가의 직업을 농사에 비유한다. 씨를 심어놓지 않으면 당연히 거둘 것도 없다. 지금은 많이 보지 않더라도 꾸준하게 작품 활동을 하는 것은 수확을 하기 위한 밑거름이다. 무언가를 쓰면서 드는 느낌은 오로지 글을 쓰는 존재로 귀결되지만 그것이 마무리가 되면 받는 느낌은 글조차 쓰지 않는 존재로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럴 때 슬럼프가 온다. 돈을 벌기 위한 것보다 더 중요한 무언가를 해야 하는데 하지 않고 있을 때 그 존재의 의미는 희석된다.
이 책을 쓴 작가가 웹툰 분야이기는 하지만 창작을 한다는 점에서는 유사한 공통점이 있다. 쉽게 잠시만 도망가자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과거에 잘못된 선택을 한 것 역시 자신이 한 것이고 그럴 수 있다. 그러나 그것으로 인해 제삼자가 피해를 입는 것은 자신의 잘못이다. 잠시만 도망갈 수 있는 사람은 지금까지 정성껏 성실하게 살아온 사람들의 치트키라고 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