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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Apr 11. 2018

고성 탐하기

고성의 맛과 그 역사

사람이 살던 곳에는 모두 그곳만의 이야기가 있다. 똑같은 맛을 표준으로 만들어내는 프랜차이즈와 달리 그 지역에 있는 토속적인 식당들은 모두 그 고유의 맛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그곳 사람들의 역사가 함께한다. 바닷가와 가까운 곳은 해산물 위주의 요리와 음식을 저장하는 방법이 발달된 곳은 독특한 향이 있는 음식들이 주로 나온다. 


고성의 맛있는 이야기라는 식당은 그날그날 재료에 따라 음식들이 달라진다. 통영이나 사천의 식당들이 실비집으로 발달되었던 것처럼 고성에도 비슷한 맛집들이 여러 곳 있다. 고성의 맛있는 이야기에는 어떤 음식들이 식탁을 채우며 나올까 생각하며 왔는데 역시 이곳만의 맛이 따로 있었다. 

몸에 좋다는 장어부터 보기에도 먹음직스러운 음식들이 계속 나온다. 게다가 이곳은 그리 비싸지도 않은데 단골들이 특별히 부탁하면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어주기도 한다고 한다. 

여러 가지 나물이 함께 나오는 이 맛은 봄의 맛이며 생명의 기운이 도는 그런 느낌이다. 

홍합과 미역이 듬뿍 들어간 국에다가 콩과 조가 들어간 밥을 넣어서 한 그릇 뚝딱 해본다. 밥의 고슬고슬하고 쫀득한 맛이 미역국의 바다향기와 어우러져서 목 넘김과 식감이 좋다. 

고성에 대해 조금 더 알아보기 위해 고성박물관으로 발길을 했다. 고성은 어떤 도시였을까. 

남해에 자리한 고성은 3세기경부터 고자곡등으로 불렸다고 한다. 고어에서 '자'는 '재'와 같은 것으로 성곽을 의미한다고 한다. 통일신라 경덕왕 때 고성군으로 개명은 옛 명칭을 현지화하여 표기한 것으로 '탄탄한 성곽의 도시'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고성은 중국과 일본을 잇는 남해안 교역의 중심지였는데 고성에 있는 성곽은 유사시 방어요새로 사용되어 왔다. 

고령의 대가야의 고장이었다면 소가야의 고장은 고성이다. 앞에 똑같이 '고'가 붙어 있는 것도 조금은 특이해 보인다. 고자미동국 그리고 고자국이라고 불리던 고성에는 20여 개소의 성곽이 분포되어 있다. 그리고 발굴에서 보듯이 동외동 유적은 문헌에서 변진고자미동국, 고사포국, 고자국 등으로 표현되는데 이는 소가야 성립 직전 고성지역을 아는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고 한다. 

군 단위의 박물관으로는 상당히 잘 조성되어 있는 편이다. 기원전 2세기 무렵부터 고성읍을 중심으로 청동기 문화가 발달하였는데 이는 중국계 토기문화의 유입으로 인해 고성지역이 주요 거점으로 등장하게 된 것을 알 수 있다. 

삼국유사에서 '소가야'가 처음 등장하는데 대가야는 큰 가야이고 소가야는 작다는 의미로 당시인들이 스스로를 부르는 명칭으로 적합하지 않다고 한다. 멸망하기 전까지 소가야는 통영, 거제, 사천을 중심으로 발달하였으며 이들 지역은 세부적인 차이가 있으나 고성식 토기를 주로 사용하여 다곽식의 순장풍습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하나의 권역으로 볼 수 있다고 한다. 

동쪽에 있는 아라가야가 560년에 멸망하고 지금의 고령군을 중심으로 세력을 유지하던 대가야가 562년에 멸망하였다. 신라에 의해 대부분의 가야국이 멸망하였으므로 그 사이에 고성에 있던 소가야도 멸망한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이후 신라에 흡수되어 통일신라-고려-조선을 거쳐 대한민국 공룡의 고장 고성으로 자리매김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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