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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Apr 25. 2018

자주적인 삶이란

경상북도 독립운동기념관

누군가에게 영향을 받지 않고 자주적으로 살아가는 것은 법적인 한도 내에서 제약을 받지 않는다는 의미다. 한반도는 일본에 의해 강점되어 36년의 세월 동안 자주적인 삶을 살아갈 수가 없었다. 일본이 정해놓은 규칙과 법 그리고 교육관에 의해 시간이 지나가며 길들여졌다. 그러나 길들여지지 않고 한반도의 독립을 위해 뛰었던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들을 독립운동가라고 부르기도 하고 항일 의병이라고도 불렀다. 경상북도 독립운동기념관은 안동시의 독립운동가들을 기리는 공간에서 경상북도 전체에서 활동했던 독립운동의 흔적을 담고 있는 곳이다. 

봄날의 기운이 물씬 돋아나는 어느 날 경상북도 독립운동기념관을 찾았다. 안동에 있는 이곳은 처음 방문하는 곳이다. 안동하면 양반의 고장과 하회마을과 안동 소갈비만 알았는데 이번 기회에 독립운동기념관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만으로 반가웠다. 천안에 있는 독립기념관은 여러 번 가봤어도 다른 지역을 대표하는 독립운동기념관을 가보는 것은 처음이다. 

독립운동기념관 안쪽으로 들어오자 세계 독립운동의 으뜸이 경상북도였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경상도는 조선 말기에 양반들이 세력을 잡았던 곳으로 어떻게 보면 자주적인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 많았을 수밖에 없었다. 

이곳 독립관은 독립의 불씨부터 시작해서 망국의 어둠을 헤치고, 1919 암흑을 찢는 만세의 불길, 만주에 심은 독립의 불씨, 잠들지 않는 등불, 새 나라의 여명이라는 콘셉트로 조성이 되어 있는데 그 구성이 깔끔해서 이해하는데 별다른 어려움은 없다. 제국주의가 전 세계로 퍼져나간 것은 1500년대로 1900년대에는 이미 수많은 나라들이 유럽이나 일본 등의 식민지화가 되어 있었다. 19세기 말에는 전 세계의 대부분의 나라가 열강들의 지배를 받게 되었고 수많은 국가에서는 노예가 양산되었다. 

경상북도에는 수많은 지자체가 있는데 적지 않은 곳에서 전기 의병이 일어났는데 그 수가 적지 않다. 문경의진, 예천의진, 김산의진, 영주의진, 봉화의진, 의성의진, 영해의진등 스무 곳 가까이에서 의병이 일어나게 된다. 

독립을 하기 위해서 두 가지를 병행해야 하는데 지금 이 상황이 올바르지 않다는 것을 인식시켜주기 위한 교육과 한편으로는 폭력에는 폭력으로 대응해야 하는 의병항쟁이 바로 그것이다. 의병은 관군이 아닌 민군으로 구성이 되는데 경북은 전국에서 가장 먼저 의병이 일어난 곳으로 1894년 안동에서 일어난 갑오의병이 그 시작이었다. 

국가가 수립되고 가장 필요한 것은 외교권이다. 일본은 1905년 을사늑약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는데 이때 의병이 전국에서 일어났고 경북 동해안과 동남쪽에서는 정환직과 정용기 부자가 산남의진을, 평민 의병장이었던 신돌석이 영릉의진을 이끌었다고 한다. 문경을 여러 번 가봐서 이름도 익숙한 이강년 부대가 활동한 것도 을사늑약이 기점이었다. 

의병들이 한반도에서 그 힘을 잃어가기 시작한 것은 1907년으로 헤이글 밀사 사건을 빌미로 광무황제의 퇴위와 함께 활동하던 의병들을 본격적으로 탄압하면서부터다. 이때부터 숨어서 독립운동을 하던 사람들과 만주로 이동하여 새로운 조직을 만드는 방향으로 전개되기 시작한다. 

국가의 부채인 국채를 보상하고 자주적인 힘을 가지기 위한 국채보상운동은 경북에서 이끌었다. 1907년 2월 대구에서 국채보상운동이 일어났는데 이는 일본에게 진 나라 빛 1,300만 원을 갚아 식민지가 되는 것을 막으려는 운동이었고 이는 전국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했지만 결국 일본의 방해로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영화로 알려지기도 했지만 박열은 일본에서 거주하면서 아나키스트로 활동하기도 했었다. 친일파 처단의 선두에 섰던 엄순봉이나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활약했던 류림도 경상북도 출신이라고 한다. 

경상북도는 양반들이 많아 여성들의 활약이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적지 않은 여성들이 독립운동에 참여를 했다. 경북은 유항의 전통이 강한 관계로 계몽운동이 늦게 시작한 감이 있었다. 그러나 후에 빠르게 퍼져나간 계몽운동은 대중들을 일깨워서 부강한 나라의 기틀을 다지는데 발판이 되기도 했다. 


"시대의 변화를 따르는 것은 선비의 마땅한 자세입니다. 낡은 것을 고치려면 반드시 형식이 먼저 바뀌어야 합니다. 우리가 굴레를 벗어던지려면, 반드시 한 치의 상투도 없어야 할 것입니다." 

경상북도는 자정순국 서훈자가 61명에 달하는 곳으로 전국에서 자정순국자가 가장 많은 곳이라고 한다. 나라가 무너지자 대의 정신이 강했던 지역의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 자신의 의지를 피력했다. 


오늘의 젊은이들이 도무지 역사 관념이 없어 단군. 기자. 삼국이 어떤 역사인지 알지 못하고 조국 정신이 나날이 없어지니, 작은 걱정거리가 아니다. - 류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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