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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May 06. 2018

배움의 향기

안동 병산서원

배움이라는 것이 때가 있다고 말하는 어른들도 있지만 때와 상관없이 배울 수 있는 것이 깨달음이다. 학창 시절의 공부가 사회에 적응하고 일을 하기 위한 기초교육이라면 성인이 되어서 하는 배움은 의식의 진화로 이어진다.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병산리 30에 가면 건축이 자연이 되는 병산서원이 있다. 전국에 훼철령으로 인해 사라진 서원을 제외하고 많은 서원을 가봤지만 병산서원만큼 자연과 어우러지는 서원을 찾는 것은 쉽지가 않다. 


자연 속에 그대로 파묻힌 것 같은 병산서원은 선학과 후학의 격식을 살리면서도 자연의 아름다움을 함께 담아놓은 매력이 있다. 자연 속에 존재하는 생물들은 자신들의 특색에 따라 건축물을 지어 올린다. 그리고 인간들은 그것을 보고 비슷하게 만들면서 건축문화를 발달시켜 왔다. 지금은 인간이 거주하는 곳이지만 어떤 것은 곤충이나 동물이 거주했던 공간과 매우 유사하다. 

대학 다닐 때 배웠던 대표적인 건축가 가우디는 자연 속에서 건축의 모티브를 찾았다. 우리의 한옥 역시 자연 속에서 모티브를 찾고 자연을 거스르지 않은 형태로 집을 만들었다. 스스로를 멋지다고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자연의 위대함 속에 스르르 묻혀버릴 것 같은 공간에 병산서원이 있다. 

우선 병산서원의 안쪽으로 걸어서 들어가 본다. 입구에서 보면 뒤의 건축물이 공간을 열고 바로 뒤에 있는 건축물을 아주 조금만 보여주고 있다. 사람의 매력 역시 비슷하다. 초반에 그 사람의 모든 것의 바닥이 드러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알면 알수록 매력이 나오는 사람이 있다. 오래가는 것은 역시 후자다. 처음에 한옥을 접할 때는 불편하게 살았던 옛사람의 집이라고 생각했지만 자주 보니 그 매력이 자꾸 생겨난다. 외삼문인  復禮門(복례문). '예를 다시 갖추는 문'이라고 해석될 수 있다. 

봄을 알리는 꽃과 오래된 건축물의 조화가 얼마나 멋진가. 류성룡과 함께 그의 셋째 아들 류진의 위패를 모신 곳이 병산서원으로 퇴계 이황의 제자로 스물네 살에 벼슬을 시작하여 우의정까지 오른 류성룡은 국난을 내다보았던 사람이다. 그리고 정읍 현감의 낮은 위치에 있던 이순신을 전라 좌수사로 천거하여 올리게 된다. 이곳 만대루는 꽤나 멋진 건축물이다. 봄에 처음 찾아온 병산서원에서 가장 규모가 큰 만대루에서 건축미를 감상해본다. 

조그마하게 미니 정원을 조성해놓았다. 이곳 정도가 되면 크게 만들어도 되련만 작게 연못을 파놓고 중간에 떠 있는 것 같은 인공섬과 그 위에는 나무가 한그루 심어져 있다. 

후학들이 거주하면서 살았던 공간이 만대루를 지나면 양쪽으로 들어서 있다. 한옥에 구들을 들이면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 아궁이고 대청이고 앞에 마당이 만들어진다. 건물이 채워져 있는 공간이라면 마당은 비워져 있는 공간이다. 모든 것을 채우려고 하다가는 딱딱하고 부질없는 것이 된다. 사람의 인생 역시 비워지는 것이 있으면 채워지는 것이 있다. 

저 혼자임에도 스스로를 경계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자신이 부족함을 스스로 깨닫고 배움의 향기가 몸에 스며들게 하려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사람들은 배운다고 하면 돈을 벌기 위해 기능적인 것을 배우는 것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더 이상 익히려고 하지 않는다. 돈이 되지 않아도 스스로가 영원히 변하지 않을 가르침을 담기 위해 배울 때 그 사람은 아름다워 보인다. 

이곳이 무엇인지 몰랐지만 가까이서 보니 예전에 사용했던 화장실이다. 이곳은 문이 따로 없다. 그냥 달팽이처럼 굽이쳐 들어가 있기에 외부에서 보이지 않는다. 밖에서 누가 있냐고 물어보고 대답이 없으면 들어가서 볼일을 보면 된다. 

하동을 굽이쳐 흐르는 강이 앞을 유유히 흐르고 뒤에는 병산이 병풍처럼 펼쳐진다.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을 지켜왔던 수많은 선비들의 혼이 이곳에서 함께하고 있다. 배움의 향기란 쉽게 얻을 수 없는 것이지만 돈을 주면 살 수 있는 달콤한 향수보다도 더 진하고 오래가며 내면까지 파고드는 매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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