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량사에 잠들다.
수진 : 어쩐일이야 세명의 남자가 시간에 맞춰 나오다니..
주만 : 응당 시간 약속은 잘 지켜야지.
소희 : 평소에 그렇게 하지. 후배 온다고 하니까 시간 맞춰 나온 거지.
진수 : 우리를 뭐로 보고 그러는 거야.
성현 : 저 뒤에 오는 여성분이 소윤 씨야?
소희 : 소윤 씨? 언제부터 그렇게 젠틀맨 다워진거야?
진수 : 소개해줘 봐.
소희 : 소윤아 이쪽은 일명 역사모 회원들 그리고 이쪽은 고등학교 후배면서 지금 같은 대학에 다니는 엄소윤.
진수 : 안녕하세요. 역사모 회장 박진수입니다.
주만 : 저는 신주만으로 여기서 유일하게 차량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성현 : 역사학과이며 석사생인 황성현입니다. 아마 제설명을 제일 많이 듣게 될 거예요.
수진 : 나도 역사학과 석사생 수진이야. 반가워.
진수 : 그런데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신입생 아니에요? 얼굴이 너무 동안이다.
소윤 : 하하.. 아니에요. 심리학과 4학년이에요. 23살에 나이 많은 처자예요.
주만 : 저도 참 역사 좋아하는데 보통 젊은 사람들은 역사 안 좋아하는데 자진해서 이 모임에 참하겠다고 하는걸 보면 남다른 거 같아요.
소희 : 네가 언제 역사를 좋아했냐?
주만 : 됐고. 어떻게 제차로 갈까요?
소윤 : 아니에요. 저도 차가 있거든요. 어차피 7명이라서 차는 한대 더 필요할 거라고 소희 언니가 그랬었어요.
소희 : 너네들 계속 존댓말 할래? 적당히 하자.
진수 : 처음 봤는데 어떻게 말을 놔. 근데 그래도 되나? 소윤이?
소윤 : 저도 그게 편해요.
진수 : 소윤아 차는 어디 있어? 애들아 내가 주소는 보내줄게.
주만 : 아니야. 내가 옆에 타서 방대한 역사 지식을 기반으로 설명해줘야지.
소희 : 주만이는 운전안하냐? 그리고 소윤이 차는 2인승이야. 그리고 내가 옆에 타고 갈 거고..
수진 : 남자들 하는걸 보니 참 어리다. 아무튼 가자.
주만 : 오~ 2 인승 하니까. 무언가 있어 보여. 스포츠카인가?
수진 : 아니 내가 들었는데 그 있잖아 스마트 포투인가? 벤츠에서 나온 경차
진수 : 아~ 그 차 예쁜데. 그런데 소윤이 참 개념 있어 보인다. 묘한 매력이 있어.
성현 : 맞아 다소곳한 거 같으면서도 차분한 느낌. 그리고 쟤들보다 어리잖아. 좀 있으면 오빠란 소리도 들을 거야.
수진 : Guys.. I still here. 남자들 보면 어린 여자 참 좋아해.
진수 : 남자들은 유전적으로 건강한 후손을 만들어야 된다는 정보가 DNA에 기록되어 있고 여성은 나이가 어릴수록 건강한 후손을 생산할 확률이 높은 거지. 우리는 본능에 따르는 것뿐이라고.
수진 : 예 예. 본능에 충실해서 좋겠네.
주만 : 그건 그렇고 우리 어디 가는 거야?
수진 : 아무리 역사를 몰라도 생육신은 들어봤겠지? 그중에 방랑인으로 평생을 살았던 김시습의 흔적을 찾아가는 길이야. 그리고 진수가 그러는데 무량사 앞에 괜찮은 음식점이 있대. 겸사겸사.. 그리고 소윤이 어머니가 김시습의 후손이래. 우선 그곳을 먼저 가고 싶다고 했나 봐.
진수 : 김시습? 금오신화 쓴 사람?
성현 : 맞아. 최초의 소설이라고도 불리는 금오신화에 다섯 가지 작품이 수록되어 있는데 소재와 주제가 특이한 것이 특징이야.
금오신화 : 경이적인 세계관을 보여주었으며 이른 시기의 소설로 한계나 장르적 불안정성이 있다고는 하나 작가의식이나 내용. 기교 측면에서 훌륭한 문학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 작품이다. 한국소설의 출발점이며 후대소설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소희 : 애들 어떤 거 같아?
소윤 : 재미있는 오빠들 같아요.
소희 : 괜찮은 친구들이야. 그리고 이렇게 역사를 좋아하고 찾아다니는 사람들도 드물긴 해.
소윤 : 언니가 괜찮다면 괜찮은 거겠죠.
주만 : 소윤아. 운전해서 오는데 피곤하지는 않았어?
소윤 : 아니에요. 피곤하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이곳이 김시습 영정이 있다는 무량사예요?
수진 : 응 여기가 바로 그곳이야.
소윤 : 엄마한테 이야기는 많이 들었거든요. 어릴 때부터 엄마한테 이야기식으로 역사를 많이 들어서 이런 곳이 낯설지가 않아요.
진수 : 사람이 되었어. 이런 처자를 아직까지 발견하지 못했다니..
수진 : 우리 원래의 목표로 돌아가자.
소희 : 그래 잡답은 있다가 식당에 가서 하고.
성현 : 김시습이 천재였다는 것은 여러 가지 사례로 잘 알려져 있는데 김시습이 5살 때 당시 정승이었던 허조라는 사람이 김시습에게 물어보았대.
허조 : 내가 늙었으니 늙을 노자를 넣어 시를 지어보거라.
김시습 : 늙은 나무에 꽃이 피었으니 마음은 늙지 않았네.
진수 : 어릴 때 그 말의 의미를 담아 시를 짓는 것이 가능했을까?
수진 : 타고 난 것도 있지만 노력도 엄청나게 했던 사람이야. 시습이라는 이름은 《논어》의 첫 머리에 나오는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않은가(學而時習之 不亦說乎)” 에서 따서 지어주었다고 하니까. 이름이 주는 힘도 무시할 수 없는 거 같아.
주만 : 맞아 소윤 하니까 여성스럽고 그런 느낌이 묻어나잖아.
소희 : 수진아 생육신이 된 게 언제인 거야?
수진 : 김시습은 21살의 나이에 산속에서 세상 모르고 글을 읽고 있다가 수양대군이 왕위에 올랐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대. 그 소식을 듣자마자 읽던 책을 모두 불사르고 미친 척까지 했다고 하더라고.
성현 : 빈곤한 삶을 살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세상을 등지고 산 것은 아니었어. 시간 나면 바닷가도 가고 시전에 나가 사람들 구경도 하고 시를 쓰고 싶으면 산속에 들어가기도 했었어. 그리고 무전 취식하는 삶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밭을 일구고 씨를 뿌려 직접 키워 먹었는데 기생하여 사는 삶은 또 싫어했던 거지.
수진 : 당시 세조의 주변에 힘 좀 있다는 기득권 세력한테 거침없는 말을 하면서 살았기에 친구는 많이 없었나 봐. 외로운 인생이었을 거야.
소희 : 천재는 외로운 법인 거 같아.
소윤 : 맞아요. 심리학적으로 볼 때 행복한 사람들은 극히 사교적인 성향이 있거든요. 심리학자였던 마틴 셀리그먼은 세 가지 행복한 삶이 있는데 '즐거운 삶', '훌륭한 삶', '의미 있는 삶'을 뽑았는데요. 보통 훌륭한 삶까지는 몰라도 일반 사람들은 즐겁고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살아가니 행복한 거죠.
주만 : 그랬구나. 즐거운 삶이란 이렇게 어울리는 삶도 포함이 되겠네.
소윤 : 사람들이 가족여행을 하고 친한 친구들과 스포츠를 즐기는 것도 사교행사에서 교제를 즐기는 방법 중에 하나인 거죠. 같은 공통 관심사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지적. 정서적 만족을 지니는 것은 행복의 필수 요소 같아요.
진수 : 그 나이답지 않은 식견이야.
수진 : 소윤이 말대로 지적. 정서적 만족을 지니려면 공통점이 있어야 하는데 김시습은 시대의 불운한 천재여서 평생을 방랑하며 살았어.
소희 : 혹시 금오신화 이야기했어?
성현 : 응 오면서 잠깐 이야기했는데.
소윤 : 저도 소설을 참 좋아하는데 금오신화를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어요.
주만 : 그래 우리 금오신화에 대해 좀 더 알아보자.
수진 : 너희들 중에 포송령의 '요재지이'를 읽어본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금오신화를 읽어보면 그 작품이 연상이 되더라고.
소희 : 영화 천녀유혼의 소재가 있었던 작품 말하는 거지? 그렇다면 조금 비현실적인 소재가 특이하게 얽혀 있겠네.
성현 : 금오신화의 특징이라면 우리 나라가 배경이고 우리나라 사람이 등장인물이며 한국만의 풍속. 사상. 감정이 잘 결합된 작품이지. 그 작품의 이면에는 주인공의 정당한 요구를 용납하지 않으려는 세계의 횡포를 거부하고 바꾸어서 같이 공존하면서 살아가려는 주인공의 소망이 묻어난다고 해야 하나.
수진 : 금오신화의 수록된 작품의 공통점을 보면 모두 세상을 등진 다는 거야. 잘못된 세계라면 부정하고 그 속에 동화되지 않겠다는 김시습의 정신세계가 엿보이는 것 같아.
소윤 : 금오신화가 최초의 소설이라는데 세상에 적응하지 못한 천재의 안타까움이 묻어나는 거네요.
진수 : 세상이 분명히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주만 : 우선 먹고는 살아야지. 세조가 단종을 몰아냈다는 사실이나 권문세가가 백성을 착취한다 하더라도 그 세상에 들어가긴 해야 하지 않을까.
소희 : 인생에서 어떤 삶이 정답이다라고 말하기는 힘들어. 방랑인 김시습같이 세상의 불공평과 불의에 저항하면서 평생 떠돌아다니는 삶을 선택한 사람도 있고 동시대에 신숙주같이 세조 측에서 서서 권세를 누리는 삶을 선택한 사람도 있잖아.
주만 : 이 정도면 된 거 같은데.. 그만 가자.
수진 : 그래 이제 내려가자.
소윤 : 이 모임 재미있는 것 같아요. 의미도 있고 다들 대단하세요.
진수 : 소윤이가 자주 참석했으면 좋겠어. 아까 잠깐 말했는데도 보통이 아닌 거 같아.
주만 : 맞아 이제야 3:3 딱이네.
소윤 : 시간 되면 참석하도록 할게요.
김시습 : 김일성의 아들로 태어난 김시습의 본은 강릉이다. 수양대군의 단종에 대한 왕위 찬탈에 불만을 품고 은둔생활을 하며 벼슬길에 오르지 않았다. 사육식의 시신을 몰래 수습하여 경기도 노량진에 암장했다고 전해지며 그가 만나 교유하던 인물로는 서거정, 김담, 김종직 등이 있다. 은둔과 방랑생활을 하던 그는 1493년 충청도 홍산군 무량사에서 병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