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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May 24. 2018

부처님 오신 날

사천의 다솔사

절밥 맛이 그렇게 좋더냐. 

절밥을 한 번 먹어보면 고기가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어도 맛이 좋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아마도 오래전부터 고기 같은 것을 넣지 않고 맛을 내는 방법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경남 사천에 가면 무려 1,5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오래된 사찰이 있다. 범어사의 말사로 503년(신라 지증왕 4)연기조사가 개창했던 것을 신라 말기 불당 4동을 증축하면서 다솔사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다솔사가 대사찰은 아니지만 부처님이 오신 날에는 다솔사의 입구 1.5km 전부터 이렇게 차가 막힌다. 길가에는 끝도 없을 정도로 주차장으로 변했고 어쩔 수 없이 이곳에서 차를 세우고 걸어서 올라가 본다. 그렇게 덥지 않지만 생각지도 않은 산행이 시작되었다. 

다솔사가 자리한 봉명산은 다솔사 외에도 다른 사찰이 세 곳이나 있다. 암자인 서봉암을 비롯하여 보안암과 봉일암이 있다. 정확하게 말하면 사찰이라기보다는 암자에 가깝지만 봉명산의 기운이 남다르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봉명산은 다솔사에서 시작해서 봉명정, 녹차밭을 보며 돌아볼 수 있는 등산길이 조성되어 있다. 

사찰에는 절밥 문화도 있지만 차문화도 같이 내려온다. 사찰에 있는 승려 치고 차맛을 모르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전남 강진에 가면 오래도록 그곳에서 유배하면서 다양한 책을 저술했던 정약용이 있는데 정약용도 그곳에서 승려와 매일 차맛을 보면서 하루를 보냈다. 

다솔사에는 차 역사관이 조성되어 있는데 다솔사의 '다'는 차를 의미하기 한다. 다솔사와 차에 대한 역사는 매우 깊은데 통일신라시대에 김대렴이 당나라에서 차나무 씨앗을 가지고 와서 현대 하동에 왕의 차의 씨앗을 뿌리고 이곳에도 야생차밭을 만들었다고 한다. 다솔사의 적멸보궁 뒤편에는 오래된 묵은 차나무들이 즐비한데 인위적으로 조성한 것이 아니라 산비탈에 자연적으로 형성된 곳이다. 

차와 그 역사를 같이 한 다솔사에는 차 향기가 머물러 있다. 차와 관련 있는 대표적인 인물로 충남 홍성에 생가가 남아 있는 만해 한용운이 있다. 1939년 8월 29일 다솔사에서 만해는 동지들 후학이 마련한 회갑연에서 다솔사 경내 안심료 앞에서 황금편백 3그루를 기념식수하였다. 


본 대로 느낀 대로

먹구름 걷히는 곳 둥두렷한 달

찬 그 빛 먼 나무에 곱게 적시고

학도 날아가고 고요한 산엔

누군가 잔설 밟고

가는 발소리

홍매 꽃이 벌어 중은 삼매에 들고

소낙비 지나가매 차도 한결 맛이 맑아

호계까지 전송하고 크게 웃다니!

잠시 도연명의 인품 그리어 보네

신라시대에 만들어졌지만 대부분의 건물이 임진왜란 때 불타 사라지고 숙종 때에 다시 중건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는 다솔사에는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83호로 지정된 대양루와 적멸보궁, 응진전, 명부전, 요사채, 산실이 남아 있다. 

사실 사찰을 보는 것보다 잿밥에 더 관심이 많았다. 보통 사찰에 가서 절밥을 먹으려면 시간을 잘 맞추어가야 하기도 하고 잘 맞춘다고 해서 절밥을 쉽게 맛볼 수도 없다. 그러나 부처님 오신 날에는 대부분의 사찰에 가면 절밥을 먹을 수 있다. 그것도 하루 종일 말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크지도 않은 사찰 다솔사에 모여서 가족 나들이 겸 한 해의 소원빌기를 하고 있다. 사람들마다의 소원이 담긴 연등이 다솔사 경내에는 한 가득이다. 경내에는 초청을 받아온 음악인들이 음악을 연주하고 있어서 사찰이 조용하지만은 않다. 그렇다고 시끄럽지도 않은 관광지의 모습이다. 

보통 사찰에 적멸보궁을 조성해놓은 곳이 많지는 않은데 다솔사에는 적멸보궁이 있다. 석가모니불이 『화엄경』을 설한 중인도 마가다국 가야성의 남쪽 보리수 아래의 적멸 도량(寂滅道場)을 뜻하는 전각이라는 의미의 적멸보궁은  따로 불상을 봉안하지 않고 불단(佛壇)만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곳 외에도 통도사의 적멸보궁, 정암사의 적멸보궁, 법흥사의 적멸보궁 등이 있고 그 뒤에는 불사리 및 정골을 직접 봉안한 것이 일반적이다. 

적멸보궁 뒤에는 이렇게 불사리가 안치가 되어 있는데 이곳에는 금색으로 자신들의 이루고 싶은 소원을 적어서 매달아놓은 것이 눈에 뜨인다. 

불교에서 가장 큰 명절인 부처님 오신 날에 다솔사에서는 그 유명한 차맛을 직접 맛볼 수도 있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한해의 반을 마주한 소감을 느껴볼 수 있다. 벌써 5월이 거의 지나가고 있는데 이런 때 다솔사의 한적하면서도 분주한 이 느낌이 좋다. 

앞에도 말했지만 사천의 다솔사라는 사찰이 궁금하기도 했지만 절밥 맛이 더 궁금하기도 했다. 딱 네 개의 나물만 들어가 있지만 상당히 먹음직스러워 보인다. 이곳에서 나물이 들어가 있는 그릇과 열무김치가 들어가 있는 그릇을 들고 앞으로 가면 밥과 떡 등을 따로 받아가면 된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별거가 있는 맛이 난다. 잘 비벼서 먹으면 한 끼 잘 해결할 수 있다. 민족의 명운이 함께 했던 다솔사의 역사적인 기록도 좋지만 무엇보다 배가 고프지 않아야 뭐라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건더기도 별로 들어가 있지 않지만 열무김치의 국물이 무척이나 시원하다. 오래도록 담가본 열무김치의 내공이 느껴진다. 그냥 맨밥을 말아서 먹어도 너무나 궁합이 절 어울릴 듯하다. 

이곳의 터가 너무나 좋은 명당터라 세도가들이 사사로이 이곳에 묘를 쓰려고 했는데 스님들이 상소를 올려 임금이 어명으로 다솔사 도량에 혈을 금하게 한 표석이 이곳에 있다. 

이곳에 기거하면서 문학을 연마했던 김동리를 비롯하여 민족 교육 사상 지도자들이 다수 배출되었던 다솔사에는 유독 소나무들이 많이 심어져 있다. 다솔사의 먼 곳에서 차를 세우고 걸어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부처님 오신 날 많은 사람들과 같이 공감하고 공유할 수 있었던 다솔사의 절밥이 기억에 남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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