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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May 24. 2018

시간정지

하동 악양면 동정호

지리산 때문인가 공기가 좋기 때문인가는 모르겠지만 시간이 정지될 정도로 매력적인 호수가 하동 악양면에는 있다. 특히 이른 아침에 찾아가면 너무나 좋은 풍광을 만날 수 있어서 매력이 넘친다. 호수에 비친 나무 한 그루 지리산, 구름이 한 폭의 수묵화보다 더 진한 색채를 만들어낸다.


이른 아침에는 공기가 맑아서 색채가 더 진하게 우러난다. 녹색은 녹색대로 하늘색은 하늘색대로 물색은 물색대로 말이다. 동정호에는 전승되는 이야기가 있는데 동정호 부근에는 노모(보통 전설에서는 노부가 아닌 노모다)를 모시고 가난하게 살아가는 총각이 있었는데 동정호에서 잡히는 물고기를 잡아서 생활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노모에게도 노환이 왔고 장가도 못 간 총각은 처자를 찾는 대신 노모의 병을 고치기 위해 사방팔방으로 돌아다녔지만 결국 세상을 뜨고 만다. 

그러고 나서 맨날 하던 짓인 낚시를 하면서 먹고살다가 상당히 큰 금붕어를 잡았는데 먹기에는 그렇고 해서 물통에 넣고 날마다 물을 갈아주곤 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밥상이 차려져 있는 것이 아닌가. 흔히 알던 우렁이 각시 이야기가 아니라 금붕어 각시 이야기가 탄생한 것이다. 

금붕어는 용왕의 딸이 잘못해서 이 동정호에서 금붕어로 변해서 살게 되었다는 익숙한 신데렐라(원래 신데렐라는 여자를 의미한다.) 총각의 스토리가 탄생했다. 우렁이 각시와 이야기가 다른 점은 우렁이 각시는 자신의 스토리를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라는 엄명이 있었지만 금붕어 각시는 그 스토리를 주변에 퍼트려도 되었다. 

오히려 소문이 나는 것은 당연한 동정호의 금붕어 각시 이야기는 원님이 각시의 소문을 듣고 시기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 되었다. 원님은 시기를 했지만 장기 한 판으로 지고 나서 과감히 금붕어 각시를 포기하고 해피엔딩으로 이르게 된다. 

이렇게 뚜렷하게 물에 지상에 있는 모든 사물이 비치는 것은 오래간만에 마주해본다. 악양면은 슬로시티를 지향하는 곳으로 이곳에 오면 갑자기 시간이 정지한 듯한 느낌을 받는다. 아인슈타인의 이론에 따르면 중력이 체감하기 힘들 정도로 강한 곳에서는 시간이 느리게 간다고 한다. 그런 중력이 이곳에 있다면 아마 이렇게 사진을 찍고 있지는 못하겠지만 뭐 그렇다고 생각하면 그만 아닌가. 

행복한 삶이 있다는 하동의 슬로시티 악양면에는 동정호반에 나무들이 심어져 있다. 주변에 심어져 있는 수양 버드나무에 매달린 깃발은 탐방객들의 안녕과 풍요, 번영을 의미하며 주변에 설치된 데크길을 물리적으로 시간이 정지될 수 없지만 시간이 정지된 듯한 체감효과가 있다. 동정호에서 만나는 황(黃)·청(靑)·백(白)·적(赤)·흑(黑) 등 우리의 전통 색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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