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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May 24. 2018

칠천도

칠천량 해전이 있던 곳

경상남도 거제시의 하청면 실전리리를 넘어서면 칠천도라는 섬이 나온다. 그 섬과 거제도 사이에는 해협이 있는데 이곳에서는 임진왜란 당시에 중요한 해전이 일어났다. 약 18년 전에  칠천도 장곶과 실전 사이의 이 해협에 길이 425m의 칠천대교가 가설되어 쉽게 넘어갈 수 있다. 보통 조선의 해군을 말하면 이순신을 연상하는데 칠천량 해전은 조선 수군의 유일한 패전이자 일어나기 힘들 정도의 타격이 있었던 전투였다. 


이순신이 백의종군하게 되고 선조 30년인 1597년 7월 7일 조선 삼도수군통제사였던 원균은 이곳에서 주력 함선 300여 척과 일본 수군의 함선 1000여 척이 맞붙어 10일간 계속된 전투에서 조선 수군은 대부분의 함선이 격침되고 수군 대부분이 수장되었다. 

조금은 특이하게 생긴 배가 있어서 다가가서 바라보았다. 이 배는 선진호로 국내에서는 최초로 세계에서는 다섯 번째로 개발된 반잠수 쌍동선형 해상시험선으로 어뢰, 어뢰음향대향체계, 예인음탐기, 항만감시체계등의 성능시험을 위해 약 240,000km를 항해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의미를 기리기 위해 이곳 칠천도에 영구 전시가 되었다. 

이렇게 잔잔해 보이는 물이지만 조금만 바다로 나가면 좁은 해협에 거센 물길이 존재하며 바다의 폭이 가장 좁아지는 곳이다. 이미 고려시대에 특수행정 공동체인 부곡이 설치되었던 곳으로 지형의 형태는 북동에서 남서방향으로 길게 뻗어 있으며 거북이가 엎드린 모습을 닮았는데 다른 지역과 다르게 바다에 면해있으면서 해안 평야가 발달하여 농산물 생산량이 많아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더 많다. 

밤에 인적이 한 명도 없는 칠천도에 있는 칠천량해전공원을 걸어본다. 데크길로 해전공원의 위쪽까지 연결되어 있다. 하동에서부터 남해바다에 이르기까지 이순신의 백의종군로가 있는데 원균이 대패하고 나서 이순신의 입장이 궁금해졌다. 


“신에게는 아직도 12척의 배가 있습니다. 죽을힘을 다해 싸우면 능히 대적할 수 있습니다.” 

정말 저렇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을까. 그러나 임진왜란 당시인 1597년 8월 15일 전남 보성 열선루(列仙樓)에서 선조에게 올린 장계 내용이 기록에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사실이다. 

칠천량 해전공원은 야경도 멋진 곳이다. 사람이 별로 없고 교통편이 없어서 그렇지 차를 운전할 수 있고 자신의 자가용이 있다면 언제든지 와볼 수 있다. 선조에 의해 의금부에 투옥됐다 석방된 1597년 4월 1일부터 124일간 이어지는데 한양을 떠나 경기~충청~전북~전남~경남 진주를 거쳐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임명될 때까지 걸었다. 

조선 수군 하면 강군중에 강군으로 생각해왔지만 리더에 따라서 강군도 약군으로 될 수 있다는 것을 역사에서 다시 볼 수 있다. 이렇게 칠천도의 해전공원에 올라와서 저 먼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니 당시의 왜군과 조선수군이 맞붙었을 때의 그림이 눈에 선하다. 

조선수군은 대패했고 그 결과 이순신 장군이라는 신화를 만들어냈다. 다크 투어리즘의 한 장소 칠천량이지만 어둠이 깊으면 깊을수록 밝음이 더 빛날 수 있다는 것을 보게 된다. 아픈 역사 속에 조선 수군은 결국 건재했고 바다의 패권을 왜군에게 넘기지 않았다. 

해가 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고 했던가. 사람이나 풍광이나 농축되면 농축될수록 더 멋진 것을 만들어낸다. 해는 지고 나니 야경이 눈에 들어온다. 아픈 역사가 있는 곳은 야간에 와서 조용하게 혼자서 감상해도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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