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를 기억해달라는 걸까?
청소년들이 위험한 이유는 무엇이든지 간에 물들기 쉽기 때문이다. 그리고 법은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에게 선처를 한다. 사람은 어리다는 이유로 약자라는 이유로 정당화될 수는 없다. 문제는 청소년들이 사회의 썩은 부분을 그대로 반영한다는 것이다. 청소년들이 하는 사악한 짓은 사회의 썩은 부위를 보여준다. 최근 재벌이 하는 일탈행위나 그 자식들이 행하는 행동을 누구한테 배웠을까. 부모다. 부모의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 아이를 낳고 그 아이는 부모의 사악한 일탈을 그대로 배우면서 자라난다.
나를 기억해라는 영화는 대체 무엇을 기억하라고 말하는지 알 수가 없다. 피해자를 기억해달라는 것인지 가해자가 가해를 했던 자신을 기억해달라는 것인지 메시지가 모호하다. 그리고 가해자들을 응징하고 사회문제를 제대로 짚어내는 것도 아니다. 필자도 어릴 때 친구(친구라고 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중에 한 명이 한 여학생과 관계하는 것을 녹음해왔는데 문제는 그것이 여러 명이었다는 사실이었다. 범죄행위인 윤간은 아니었지만 당시 느낀 감정은 충격 그 이상이었다.
청소년들이 윤간을 하고 그것을 찍어서 인터넷에 올려 돈을 벌면서 살아간다. 그리고 그 돈을 가지고 폼나게 살아간다. 어른들이 그렇지 않은가. 다른 사람들의 입장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돈을 벌면 그만이라는 생각 말이다. 가장 손쉽게 돈 벌 수 있는 것이 선이다. 선을 위해서는 남을 짓밟는 악 정도는 용납될 수 있다. 인성을 배우기 전에 남을 이기는 법을 먼저 가르치고 인문학을 배우기 전에 뜻도 제대로 모르는 영어를 배우고 계산을 위한 수학을 배운다. 그것이 우리 시대 자식을 키우는 부모의 모습이다.
청소년의 문제를 지적하기 전에 부모들이 제대로 살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누군가가 읽고 있는 한 줄의 문구처럼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과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기꺼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는가. 상당수의 사람들은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을 받아들이지도 못하는 것을 넘어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를 때가 있다. 자연과 인간의 본성에 어긋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속에 중심을 지키는 것이 쉽지 않겠지만 그런 삶을 살아낼 때 비로소 사람으로서의 가치가 생긴다.
뭐 딱히 킬링타임용 영화라고 볼 수 없지만 인간 군상의 추악한 면을 보여주며 어떠한 문제도 해결하지 못했지만 적어도 한국사회가 정상적이지는 않다는 것을 조금은 느끼게 해준다. 인생이 그렇게 흘러가라고 설계가 된 것은 아닌데 왜 순리에 어긋나는 삶을 살려고 할까. 특히 영화 속에서 잠시 등장했지만 글 쓰는 기자가 자신의 영리만을 위해 남을 짓밟는 글을 쓰는 것을 보며 언론이라는 것의 비열한 속성을 다시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