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를 달리다

남북한을 종단하는 여행

지금은 화해무드가 극적으로 진행되어서 남북한의 수반이 왕래를 하고 있지만 이전 정권까지만 하더라도 양측의 대립각은 마치 전쟁 전야 같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그런 시기에 뉴질랜드의 한 부부가 분단국가인 이 한반도를 오토바이로 달리고 싶었던 모양이다. 백두산에서 한라산까지 여행을 해보겠다고 도전을 시작했다. 북한 역시 한국처럼 비자가 따로 있는데 주로 평양 주변이나 제한된 곳만 여행이 가능한 비자로 다른 곳의 여행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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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러스 모건과 조엔 모건 부부가 여행을 시작하기로 결심한 것은 2013년으로 대한민국의 반응은 당연히 냉담할 수밖에 없었다. 2013년 8월 16일 북한 입국을 한 후 하산, 청진, 백두산, 단천, 칠보, 합흥, 원산, 평양, 묘향산, 금강산을 거쳐 판문점을 지나 서울, 속초, 완도, 한라산까지 거의 한 달을 여행한 후 부산에서 2013년 9월 17일 출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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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땅인 블라디보스크는 러시아어로 '극동의 지배자'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얼지 않는 항구에 목말라하던 러시아에게 필요하던 곳이었다. 중국 땅이었던 이곳은 제2차 아편전쟁 이후에 체결한 베이징 조약에서 방대한 땅을 러시아는 얻게 되었다. 1871년부터 이 지역은 러시아에서 유일하게 일 년 내내 태평양과 연결시켜주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소련이 붕괴되기 전까지 블라디보스크는 외국인들에게 금지된 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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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dacha! (행운을 빌어요)

라는 소리를 들으며 출발한 이들은 대한민국 국민들에게는 금단의 땅인 북한에 들어선다. 북한을 오토바이로 횡단하는 이들의 눈으로 보는 북한은 요즘 종편에서 보여주는 북한의 모습과는 달라 보였다. 그중에 청진이라는 도시가 조금 독특해 보였다. 20세기 초 일본이 한반도를 장악하기 전까지 작은 어촌마을이었던 청진은 식민 지배 후에 항구와 철강 산업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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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웃음을 잃어버렸을까. 이들이 지나가면서 표현하는 것에 북한 사람들은 놀라서 입을 딱 벌리거나 손을 크게 흔들며 빛나는 미소를 보이고 환호성을 지르며 폭소를 터트리기도 했다고 한다. 외국인의 눈으로 보기에 나름 계획도시로 개발되었으며 북한의 중심도시인 평양은 파리와 브라질리아의 일부 현대 건축물의 특징과 유사해 보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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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전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지만 아직 비무장지대는 한국전쟁을 상징하는 부산물이다. 마르크스 레닌주의로 대표되는 공산주의는 본질적으로 팽창주의를 지향했다. 칼 마르크스는 그의 혁명이 대중의 자발적 봉기에 의해 초래될 것이라고 믿었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공산주의는 중국이나 베트남같이 자본주의를 받아들이는 형태로 바뀌었지만 분단된 한반도에는 최후의 냉전 유물인 비무장지대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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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과 남한을 오가는 모터사이클 여행을 했던 이들은 여행을 즐기는 사람들이다. 화해무드가 일어나고 있는 지금은 조금 낯선 환경이었지만 그들은 도전했고 결국 백두에서 한라까지 한 달 동안의 여행을 별문제 없이 마쳤다. 편하게 이들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많은 것은 아니지만 그냥 북한을 창문으로 엿보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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