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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Jul 04. 2018

공주역사전망대

공주를 한눈에 조망하는 곳

공주의 역사는 오래되었지만 백제가 주목받으면서 다시 사람들의 관심을 이끌게 된 것은 2010년대이다. 공주에는 근대문화를 담은 건물부터 백제시대에 만들어진 공산성과 무령왕릉, 황새바위 순교성지, 기독교 역사박물관, 공주역사박물관, 풀꽃 문화관, 중동성당 등이 잘 보존되어 남아 있다. 


천안에 가면 유관순 열사의 생가와 역사관이 있는데 유관순 열사의 첫 학교는 바로 이곳 공주 영명 여학교이다. 독립기념관 학술연구팀은 '이화 백년사'(이화여자고등학교, 1994)와 '영명 100년 사'(공주 영명 중고등학교 2007) 등 각종 문헌과 자료 등을 종합 분석한 결과 유 열사가 1914년 공주 영명 여학교에서 2년간 공부한 뒤 1916년 4월 이화학당에 편입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공주 영명 여학교는 현재 공주시 중동에 있는 영명중·고교의 전신이다. 공주시 최초의 우유 급식소(공주시 중동 소재)를 거쳐 선교사 길, 영명 중고등학교를 지나는데 공주를 찾는 관광객들이 선호하는 선교사의 길로 유명한 곳이다. 고등학교까지의 길가에 다양한 역사적 장면들이 그려져 있어 결혼이민자들에게는 생소한 한국의 근현대사를 알 수 있다. 



공주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에 올라가면 공주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각종 흔적들이 있다. 공주의 과거는 어떠했는지 보고 싶으면 저곳으로 올라가 보면 된다. 

공주를 알기 위해 처음 간 곳이 바로 공주 공산성이었다. 백제의 도성이며 수도 역할을 했던 공산성은 조선시대에 인조가 피난을 온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인조가 먹은 떡이 인절미로 지금까지 공주 산성시장에 가면 인절미가 유명한 것을 알 수 있다. 

절의 앞에 세워서 당간을 달아서 그날의 행사를 알리는 당간지주를 알게 된 것도 공주가 처음이었다. 

옛날에 공주가 지금의 모습으로 바뀌기 전에 옛 모습과 지금의 공주의 모습을 겹쳐서 볼 수 있다. 옛날 사진에는 초가집과 구석구석에 양반들이 살았던 한옥들이 겹쳐진다. 

영명이라는 학교 이름을 그대로 따서 영명 쉼터라고 명명된 곳이기도 하다. 1906년 미국인 감리교 선교사인 프랭크 윌리엄이 설립한 이 학교는 '전도, 개화, 민주주의'를 이념으로 세웠는데 남학생 7명을 모아 영명 남학당으로 첫 수업을 시작해 지금까지 각계각층에 2만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했고 100주년을 맞아 공주를 대표하는 명문학교로 알리고 있다. 

영명 여학교 보통과 1회 졸업생의 사진도 한쪽에 가면 볼 수 있다. 1929년 광주학생운동 때는 영명학교 학생들이 동맹휴학을 결의해 학생 7명과 교사 2명이 구속되는 등 일제의 집중 감시와 탄압을 받기도 했다. 이후 월리엄 선교사 부부가 추방된 후  학교는 1942년 폐교됐다. 해방 후 1949년 영명상업중학교로 다시 문을 열었다가 1951년 현재 교명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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