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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Jul 10. 2018

숭현서원

대전의 대표 서원 중 한 곳

대전에 자리한 서원은 서구에 자리한 도산서원과 유성구에 있는 숭현서원이다. 숭현서원은 이미 역사에서 지워진 바가 있었던 곳으로 원래 숭현서원이 있던 곳은 숭현서원지가 있는데 그곳은 대원군 서원철폐령으로 1871년(고종 8)에 훼철된 후 복원되지 못하다가 비교적 최근인 2001년에 복원이 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는 곳이다. 


현재 숭현서원은 다음 달 말일까지 동재와 서재 지붕 및 관리사 동의 보수공사가 진행 중으로 협문과, 기와, 내부 보수 및 외부 정화조 신설 등의 작업이 진행 중에 있었다. 매번 이 길을 지나가면서 가는 곳의 이정표를 보았지만 그냥 작은 건물 두어 개쯤 남아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는 규모가 있는 편이었다. 

숭현서원은 1585년 (선조 18) 정광필, 김정, 송인수를 모시기 위해 용두록에 세워 삼현서원이라고 하였는데 1592년 사액을 받았으며,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09년(광해군 1)에 중건했다. 1695년(숙종 21) 김장생·송준길·송시열을 추가 배향했다. 1585년은 참 평화로운 조선의 시대였다. 7년 후의 임진왜란이 발발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해에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전국 통일을 하고 2년 후 관백이 되었다. 

지금 이곳에서는 그렇게 풍광 좋은 자연을 만나기 힘들겠지만 예전에 이 앞에 아무것도 없을 때는 지금의 갑천이 흐르는 모습을 감상할 수 있었을 것이다. 영귀루는 선비들이 주변 풍광을 감상하며 시를 읇조리기도 하던 숭현서원의 문루다. 

이곳의 공사가 가장 크게 진행되고 있었다. 다른 곳의 입구는 막혀 있지만 이곳을 통하면 숭현서원의 안쪽으로 들어갈 수 있다. 고택의 공사는 복원이 생명이다. 

우의정과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을 역임한 정광필, 이조참판, 대사헌 등을 거쳐 형조판서를 역임한 김정, 사헌부 대사헌과 관찰사등을 역임한 송인수를 모시기 위한 숭현서원은 지금의 목동 자리에 있었다가 이곳으로 옮겨 복원되고 계룡시에 그 흔적이 남아 있는 김장생, 송촌동 동춘당 송준길, 송시열이 추가적으로 모셔지게 된다. 

여러곳을 돌아다니며 향교와 서원을 많이 만나보는데 확실히 서원의 건축물들이 더 기교가 있게 만들어진다. 향교의 경우 명륜당, 동재, 서재등의 건물이 일률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다면 서원들은 대체적으로 웅장하면서도 디테일이 살아 있는 경우가 많다. 공립기관과 사립기관의 차이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듯 하다. 

향교에서 배출된 인물이든 서원에서 배출된 인물이던간에 결국 자신을 바로 세우고 논리가 지극히 바르고 인의가 두터워서 후세의 법도가 될만 하면 문제될 것이 없다. 지금도 지식인이면서 글과 행동함의 균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많지가 않다. 대전을 밝히는 일은 옛스러운 것을 보고 한쪽으로 편백됨이 없이 세상을 바라보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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