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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Jul 29. 2018

대가야 생활촌

고령의 대표 여행지

부여에도 백제의 옛 흔적을 엿볼 수 있는 곳이 만들어져 있고 경주에도 신라의 옛 흔적을 엿볼 수 있는 곳이 있지만 고대국가로만 알려진 가야를 만날 수 있는 공간은 없었다. 고령군은 ‘신비의 왕국, 대가야’로 불려 온 대가야 도읍지르 지향하며 가야문화권을 대표하는 광역관광거점 도시로 새롭게 자리매김하기 위해 대가야읍 고아리 일원에 부지면적 1십만 2천㎡에 총사업비 537억 원을 투입하는 대규모 국책 사업으로서 2010년부터 2018년까지 9개년에 걸쳐 대가야 생활촌으로 조성을 주도하였는데 현재 완공을 코앞에 두고 있어서 찾아가 보았다. 


강하게 내려쬐는 햇살을 뒤로 한채 대가야 생활촌으로 들어가 본다. 이 곳의 주요 시설로는 대가야 생활촌, 건국설화공원, 공방촌, 상가라도못, 나루터, 한기촌(숙박촌), 주산성 전시관, 용사 체험장, 고고학 발굴체험장, 물놀이장, 수변공연장, 백두대간 탐방로 등으로 대가야의 역사문화를 체험하고 머무를 수 있는 곳을 지향한다. 

현재 일부 시설공사의 마무리가 진행되고 있어서 폭염이 끝나는 9월에는 정식 오픈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입구에는 '대가야 생활촌'이라고 표시가 되어 있지만 고령군은 마무리 단계에 들어간 ‘가야국 역사루트 재현사업’ 단지의 명칭을 공모하고 있다. 

고령을 중심으로 형성이 되었던 대가야는 후기 가야 연맹의 맹주로 김해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금관가야의 세력이 약해짐에 따라 자연스럽게 맹주가 된 국가다.  변한의 소국에서 시작되었는데 변한 지역의 철기 문화를 바탕으로 농업 생산량이 확대되면서 여러 정치 집단이 성장하였는데 철기 기술과 해상 교통으로 세를 확장해가던 대가야는 6세기 신라 법흥왕에 금관가야가 멸망하였고 압박을 받게 된다. 대가야는 백제와 동맹을 맺고 대항하였으나 신라 진흥왕의 공격으로 562년 멸망하였다.

산책로를 따라 자연스럽게 주변 공간을 돌아다니다가 보면 가야의 문화와 문명을 접하게 만들어 두었다. 건국신화를 영상 등으로 접할 수 있게 했는데 건국신화는 <동국여지승람〉 고령현조에 시조 탄생설화가 나오고 〈니혼쇼키 日本書記〉에는 가라 혹은 반파국이라고도 등장한다. 대가야의 시조는 아진아고왕이며 마지막 왕은 도설지왕으로 16대 520년간 지속된 고대국가다. 

대가야 생활촌은 물놀이장을 비롯하여 주변을 둘러 흐르는 수변공간과 중앙에는 큰 생태연못이 조성되어 있어서 뜨거운 햇살이 수그러드는 6시 이후에 산책하기에 좋다. 

경북의 명소로 자리하게 될 대가야 생활촌은 가야를 조금 더 이해하고 신화 속에서만 존재했던 실체를 만나게 해줄 수 있다. 『일본서기』에서 ‘임나’라는 용어는 여러 가야를 통틀어 부르는 데 썼는데 과거 일본이 주장했던 진구 황후의 정벌군이 369년 한반도에 건너가 7국 4읍을 점령하고 일본부를 설치한 것이 아니라 경제적인 교류를 했던 것으로 보인다. 

9월에 정식 오픈하게 되면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의 대가야 역사테마 관광지와 더불어 왕릉전시관, 대가야박물관 등과 연결되어 고령의 관광 벨트는 견고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제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시대가 아닌 가야를 포함한 사국시대로 우리의 역사는 쓰여야 할 것이다. 

다양한 체험시설과 수변공간을 가진 대가야 생활촌은 다른 곳의 역사재현사업에서 재현하는 것을 넘어서 머무는 여행지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다른 지자체 등에서 추진했던 둘러보는 재현 역사 공간의 한계의 전철을 따라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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