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을 이용해 필요한 것을 얻는다.
손자병법 36개의 전략 중에 가장 인기가 많은 전략은 31번째인 미인계가 아닐까?
미인과 영웅 이야기나 왕과 애첩의 이야기처럼 솔깃한 주제도 드물다. 같은 여자들도 예쁜 여자를 시기하기도 하지만 좋아하기도 한다. 매력 있다는 것은 남녀를 떠나 모두 공통적으로 좋아하는 그런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예로부터 남자는 제왕, 장군 등의 자리에 있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남자지만 그 남자를 조정하는 것은 여자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여성의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다. 여성 군주가 없었다는 것은 아니다. 이집트를 다스렸던 클레오파트라나 중국의 서태후, 고려시대의 천추태후, 조선의 문정왕후 등 주도적으로 권력의 중심에 있었던 여성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남자가 주도하고 여성은 뒤에서 조종하는 그런 역할을 해왔다. 그리고 그런 남자를 공략하기 위해 역사에서는 수많은 미인들을 이용하였다.
31번째 계책인 미인계가 가장 고전적이면서도 과거, 현재, 미래에도 유효한 현실적인 계책이기도 하다. 서시, 초선, 포사, 양아, 부항, 영화춘, 소봉선 등 수많은 중국의 미인뿐만이 아니라 조선의 역사에서도 장옥정 같은 희대의 미인이나 장녹수도 있었다.
타짜에서 ‘나 이대 나온 여자야’라는 명대사를 남긴 정마담은 남다른 외모와 화술을 이용하여 남자들을 도박판으로 끌어들인 전형적인 미인계의 주인공이다. 허영만 원작 만화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타짜는 인생을 담은 영화이기도 하면서 도박판에서 승자도 패자도 없다는 인생의 쓴맛을 보여주고 있다.
공장에서 일하며 남루한 삶을 사는 고니는 스무 장의 화투로 벌이는 ‘섯다’ 한 판! 에 끌어들여지는데 고니는 그 판에서 삼 년 동안 모아두었던 돈 전부와 누나 돈까지 날리게 되고 전설의 타짜 평경장을 만난다. 평경장을 만나면서 고니는 타짜가 되어가는 가운데 욕심은 점점 더 커져가기만 한다.
타짜는 인생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정마담이라는 캐릭터가 보여준 미인계가 없었다면 그렇게 극적인 스토리가 만들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정마담은 미인계로 인해 적지 않은 돈을 벌었지만 재물이라는 것이 있으면 있을수록 더 치명적인 법이다. 실제 역사에서 보면 미인에 취한 남자들도 자신의 인생을 망쳤지만 미인 역시 그 끝이 좋지 않았다.
일 一. 장 場. 춘 春. 몽 夢.
이렇듯 이 이야기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고 품고 있는 ‘욕망’에 관한 이야기이다.
도박을 하는 사람들도 자신도 노동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도박은 사람이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앗아가 버린다. 돈이 넘쳐 나서 아무리 도박을 해도 돈이 떨어지지 않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도박에 빠지게 되면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빚을 지기 시작한다. 한 방에 모든 것을 원상 회복할 수 있다고 자신을 세뇌시킨다. 영화 속에서 고니는 딸의 병원비까지 털린 교수에게 딴 돈의 일부를 주면서 다시 돌아오지 말라고 하지만 그 교수는 정마담 손에 이끌려 다시 도박판으로 들어간다.
"돈을 빌린다는 것은 자유를 팔러 가는 것이다."라고 말한 벤자민 플랭클린의 말을 인용해보면 도박을 하면 자유를 파는 정도가 아니라 인생을 송두리째 태워버리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타짜의 끝장면에서 도박에 미친 아귀는 이런 대사를 한다.
"넌 첫판부터 장난질이냐? 니 손바닥 밑에 화투장 있다에 내 돈 모두와 내 손모가지를 건다. 넌 뭣을 걸래?"
죽음의 문턱까지 가서야 비로소 모든 게 한낱 부질없는 꿈이었을 알게 되는 인간의 허황된 욕망에 관한 이야기에는 미인이 빠지지 않는다. 주나라 왕 유왕은 포사로 인해 국파인망의 길을 걸었으며 하나라 군왕 걸은 매희의 미색에 빠져 나라가 망하고 자신 역시 목숨을 잃게 된다.
미인계를 사용하여 역사를 바꾼 여인들이 적지 않다. 관능으로 세상을 지배했으며 흔히 ‘영웅은 미인의 관문을 넘기 어렵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미인 한 명이 나라를 구한 적도 있는데 춘추시대 후기에 접어들면서 오나라와 월나라 사이에 패권 쟁탈은 갈수록 치열해졌다. 갸름한 얼굴에 그윽한 두 눈이 머루알같이 빛났던 서시는 오왕 부차를 단번에 미색에 홀리게 한다.
오왕 부차에게 서시는 일목요연한 분석과 통찰력을 보여주며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미모와 지성을 겸비한 여성을 거부할 수 있는 남성은 많지 않다. 서시가 조언한 바에 따라 오나라와 노나라는 힘을 합쳐 제나라에 대한 공격을 감행했고 위기에 처한 제나라는 스스로 무너져서 제도공의 수급을 선물로 보내왔다. 오왕 부차는 단 번에 노와 제를 오나라의 속국으로 만든 것에 상당한 성취감을 얻게 된다.
오왕 부차의 마음을 완전히 빼앗은 서시는 오왕의 왼팔과 오른팔이었던 오자서와 백비를 이간질한다. 서시의 계략에 따라 부차는 사람을 시켜 오자서에게 ‘속루’라는 이름의 보검을 보냈는데 오자서는 그 의미를 깨달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오자서가 없어지자 아첨을 좋아하는 백비를 상국의 자리에 앉게 만들고 부차에게 병력을 이끌고 중원으로 출병하여 패권을 쟁취할 것을 권한다.
서시의 부추김에 오왕 부차는 중원의 제후들을 호령하는 패왕이 되겠다는 각오와 결심을 하게 된다. 무리한 전쟁준비를 하던 오왕 부차는 기원전 482년 친히 대군을 이끌고 오나라를 떠났다. 대군이 오나라를 비운 사이 월왕 구천과 대장 범려가 오를 공격하면서 태자 우가 전사하고 사상자가 넘쳐 났다. 먼 행군길에 오나라의 군대는 지칠 대로 지친 상태에서 월나라 군대에게 대패한다.
월나라에서 보낸 서시의 미인계에 당한 부차는 결국 용동도에 유배된 다음 자신의 비참한 처지를 절망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결국 월왕 구천은 자신이 목적한 바를 이루었지만 현명한 범려와 서시는 토사구팽 당할 것을 이미 깨닫고 월나라를 떠난다.
미인계의 계책을 제대로 활용한 사람은 삼국지속에 사도 왕윤이라는 사람이었다. 동한 말기에 동탁이 조정의 대권을 쥐고 전횡을 일삼고 백성에 대한 착취를 일삼았다. 거대한 동탁의 권력에 대항하는 방법으로 사도 왕윤이 생각한 마지막 계책은 바로 미인계였다. 자신이 거둬들였던 초선이라는 여인을 힘으로는 둘째 가라면 동탁의 양아들 여포와 동탁에게 동시에 소개한 것이다.
초선은 교묘한 이 간계를 써서 동탁과 여포의 사이를 벌이기 시작했고 여기에 사도 왕윤이 부채질을 해댄 것이다. 여포는 자신의 여인을 지킬 요량으로 경사에 도착하여 입궐한 동탁을 미늘창으로 한 번에 동탁의 수급을 취한 것이다. 초선의 미색을 이용해 나라를 전횡하던 도적을 살해하게 하고 그 도구로 사용된 여포 역시 초선의 미인계에 의해 자신의 인생을 망치게 된다.
미인계는 강한 적을 상대함에 있어 부드러움을 활용하는 전략이다. 여성이 연약해 보이지만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얻을 때는 남성보다 훨씬 섬세하고 디테일하다. 그리고 이 방법은 효과적이면서 생각이상으로 파괴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