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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Feb 02. 2016

한국에 희망은 있다?

당신이 바뀌면 됩니다. 

한민족은 정말 우수한 사람들이라고들 말한다. 맞다. 다른 민족보다 머리가 좋고 우수한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왜? 한국에 사는 사람들은 더우울해지는 걸까. 행복하지 않은 우리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그럼 포기하고 약육강식의  동물처럼 살아야 되는가? 사람들은 살아야 한다. 살기 위해서는 돈을 벌어야 하고 그걸 위해서는 노동을 제공해야 한다. 노동은 땀을 요구하고 모든 사람이 흘리는 땀의 성분에는 차이가 없다. 


올해 시험이 치러지는 9급 공무원 시험에 무려 22만 2,650명이 응시했다고 한다. 경쟁률은 52.6 대 1에 불과하다. 52명 정도만 가뿐히 이겨주면 안정적인 직장이라는 공무원사회로 진입할 수 있다. 국가 전체로 보았을 때 생산과는 거리가 있는 공무원이 최고의 직장인 사회는 정상적일까? 국가라는 거대한 조직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누군가는 군불을 때야 하고 열심히 연료를 집어넣어야 한다. 그 연료를 집어넣어야 할 인력들이 보이지 않는 한쪽 구석에 앉아서 생산과는 거리가 먼 수험 책만 보고 있다. 차라리 창작을 하기 위한 공부를 한다면 국가 콘텐츠 경쟁력이라도 생기겠지만 이건 시험 보기 위한 목적을 제외하면 어디다가 쓸데도 없다. 


여당의 모 대표는 이런 수많은 인력들을 놔두고 질 좋은(?) 중국 인력을 데려오자는 혜안을 내놓았다. 헛웃음만 나오는 대목이다. 정치인은 특정 이익집단을 대변하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전 국민이 잘 사는 세상을 만들어야 하고 현실감각이 있어야 한다. 왜 수십만의 사람들이 중소기업에 갈 생각은 안 하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지 조금은 궁금해야 하지 않을까. 단순히 열정이 없어서 일까? 


전두환 때가 차라리 살기 좋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 그때는 어느 직장 이든 간에 들어가면 20년 이상은 근무할 수 있는 곳이 많았고 급여도 대기업과 그렇게 차이 나지 않았다. 현재 대기업 대비 중소기업의 임금 수준은 프랑스가 90%, 영국은 85% 수준 독일은  79%이다. 반면 한국은 50%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나 전두환이 집권했을 때인 80년에는 90%가 넘었다. 경제성장률이 높았던 그때는 매년 급여가 빠른 속도로 올라갔다. 그 시대를 살아왔던 세대들은 왜? 중소기업을 가지 않느냐고 말할 수도 있지만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급여 수준은 안되고 길게 다녀봐야 10년인 직장을 바라보고 살 수 있을까? 


민주화가 되면서 국민들의 자유도는 높아졌지만 같이 높아진 것이 있다. 국민들이 말할 자유와 표현할 자유에 취해 있는 동안 정치인들은 대기업이나 조직의 힘이 강한 노동단체들의 편을 들어주었다. 대기업의 규제가 풀리고 기업의 속성인 더 많이 벌기 위해 하청업체나 중소기업 분야를 야금야금 갉아먹으면서 덩치를 키워갔다. 그들의 탐욕스러운 성장에 브레이크를 걸어야 할 정부는 그냥 가만히 두고 보았다. 


유럽의 기업들이 너무나 착해서 협력업체에게 적당한 이윤을 보장해주는 것이 아니다. 법적인 제어가 있고 정치인들은 그들의 탐욕스러운 성장을 제어할 장치를 만든다. 그들이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해야 하니까 하는 것이다. 그런 착한(?) 유럽의 기업들이 한국에 들어와서 어떤 식으로 해 먹고 떠나는지 몇몇 사례로 이미 접한 바 있다. 한국은 기업 하기 힘든 나라가 아니라 하기 아주 좋은 나라다. 규모가 있으면 그만이다. 경기가 어려운 것 같으면 기득권 언론을 통해 언론 플레이해주면 된다. 각종 법안이 기업의 발목을 잡고 있고 이는 경기불황과 일자리 창출에 방해가 된다라고 말이다.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는 지금 기득권의 언론이다. 기득권이라고 해서 무작정 비판할 일도 아니다. 그들은 시간의 여유가 있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을 뿐이다. 반대편에 있는 경향신문이나 한겨레는 반대를 위한 반대글을 들고 등장한다. 국민들은 반대를 위한 반대도 안 좋아한다. 야당이 힘을 못 얻는 이유 중에 하나는 합리적인 반대가 아니라 정치적인 이해득실에 의해 반대를 하기 때문이다. 


시대는 변했다. 이미 평생직장의 개념은 사라졌고 평생직업을 가져야 되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나 구직자들은 그 상황을 인정하지 않고 기존의 방식에 매달린다. 구직자들도 변해야 한다. 평생의 직업이 무엇인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될 때가 왔다. 동시에 사회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국민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는데 정치인들은 기존의 방식을 바꿀 이유가 없다. 


나만 잘 사는 한국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잘 사는 세상을 꿈꿀 때 한국에 희망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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