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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Aug 13. 2018

옻칠

통영 옻칠 박물관

사람은 인생을 살면 살수록 칠이 더해진다. 아름다운 색으로 칠하던 좋지 않은 색으로 칠하든 간에 개개인의 몫이지만 그것에 따라 그 사람의 가치가 달라져간다. 잘못 칠해진 칠은 쉽게 지워지지 않고 덧칠을 해서 아름다운 것처럼 보일지라도 언젠가는 그 잘못된 칠이 드러난다. 사람과 오랜 대화를 하다 보면 그런 점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과 비슷한 것이 바로 옻칠이 된 예술작품이나 그릇 등이다. 


통영의 멋진 풍광을 앞에 두고 만들어진 통영 옻칠미술관은 통영의 공방을 대표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순신 장군이 이곳에 공방을 만들고 군수물자를 만들면서 이곳에는 다양한 기술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마치 1,2차 세계대전 때 스위스로 기술인들이 모두 모여들었던 것처럼 이곳에 한반도의 기술이 집약되었다. 

 

옻칠 회화는 전통에 바탕을 둔 프로세스를 가지고 작업을 하게 된다. 작업 과정이 무던히도 길고 힘들지만 옻칠 본연의 깊이와 광채가 매력이 있다. 그 결과를 보기 위해서 예술가들은 그 고단함을 이겨낸다. 


충청남도에도 옻칠과 관련된 전시관이 있지만 통영의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천년의 신비와 기술이 집약된 옻칠공예는 한국에서는 옻칠(Ottchil), 중국에서는 치(Chi), 일본에서는 우루시(Urushi)라고 불린다. 옻은 옻나무에서 수액을 채취하여 여러 정제 과정을 거쳐 만드는 천연의 물질이다. 옻 자체가 살균과 항균작용을 하므로 인체에는 무해하지 않고 오히려 유익하다. 

 

옻칠의 색은 진하면서도 빛이 난다. 옻칠의 매력은 어두운 색에 있지 않을까. 이런 작품을 만들기 위해 채취하는 옻은 보통 두 가지 방법으로 한다. 살소법은 베어내고 새로운 움이 돋아나면 칠액을 채취한 후 베어내는 방법이며 매년 조금씩 칠액을 채취하며 베어내지 않는 양생법이 있다. 


흔히 식물성 기름으로 만든 가루 안료의 현탁액으로 그리는 유화는 아마씨 가루로 사용하여 각각 재료에 따라 약간씩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다. 옻칠 회화 역시 유화처럼 유동성을 유지하면서도 머리카락 하나 풀잎 한 포기 같은 미세한 부분까지 표현할 수 있다. 똑같이 붗칠로 작업을 하되 옻칠은 더 많은 시간이 걸리게 된다. 

 

자체로도 멋진 작품이 되지만 집에 하나쯤 있어도 좋은 회화작품이다. 17세기의 네덜란드 화가 렘브란트 역시 임파스토 기법(불투명 안료를 여려 곁으로 덧칠해서 쌓아 올리는 기법)으로 아주 유명한데 그가 사용한 기법은 두툼하게 올려 쌓는 것이라면 옻칠은 얇게 투명하게 오랜 시간 덧칠을 한다. 


그릇이 조금씩 커지는 옻칠작품으로 인생이 저렇게 변해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어제보다 1년 전보다 조금씩 그릇이 커지면서 자신이 담을 수 있는 것이 더 늘어나는 인생처럼 말이다. 


이곳은 전통의 현대화란 가치를 내걸고 우리의 전통인 옻칠로 만든 작품을 통해 우리의 고유성을 알리고 현대적 회화로 재해석해서 사람들이 접근하기 쉽게 만들려고 노력하는 공간이라고 한다.

 

다양한 색이 공존하는 옻칠작품들이다. 색채 옆에 어떤 색채를 두느냐에 따라 느낌이 달라지는 것을 '동시 대비'효과라고 부르는데 색채는 객관적인 속성이라기보다는 보는 이의 눈과 마음에 존재하는 인식의 문제로 접근하는 것이 맞을 듯하다. 

야외에 있는 작은 건물은 기획전시를 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다.

 

옻칠이 주는 광채 나 견고함, 방부, 방수, 방충, 그리고 심미성까지 가진 작품을 보고 있으면 그림과 실생활에 사용하는 용품의 경계선에서 묘하게 줄타기를 잘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랜 과정 공을 들여 만들어진 옻칠 회화작품은 빛이 난다. 오랜 과정 자신을 갈고닦은 사람은 그만큼의 빛이 난다. 옻칠만큼이나 사람을 만드는 과정은 지루하고 오래 걸린다. 20세 성인이 되면 끝나는 것도 아니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졌다고 해서 완성이 되지도 않는다. 사람의 완성은 죽을 때 그 결과를 알 수 있다. 


'색채는 반사광의 영향이라기보다는 마음속의 영적 진동' - 바실리 칸딘스키


통영 옻칠미술관 : 경남 통영시 용남면 용남 해안로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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