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는 누군가 Aug 25. 2018

공양

천안 광덕사의 열무국수

두 눈이 멀쩡하기 때문에 심봉사처럼 심청이를 공양미 300석에 넘길 가능성은 없지만 불교에서는 공양이라는 것이 일반적이다. 거의 반강제로 내야 하는 교회의 십일조와 달리 공양은 대부분 의지와 자신의 경제상황에 따라 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산스크리트로는 'pūjanā'. 처음에는 물질적인 것만을 지칭하였으나 이후 정신적인 것도 포함하게 되었는데 사찰에 대한 이야기를 그렇게 많이 쓰면서도 공양은 작년에 지인 때문에 처음 해보았다. 비록 천 원씩이지만 그렇게 해야 한다기에 해보았다. 공양하는 사람을 공양주(供養主), 공양의 의의를 기록한 것을 공양문(供養文)이라고 한다.


천안에 자리한 광덕사는 652년(진덕여왕 6) 자장(慈藏)이 창건하였고, 832년(흥덕왕 7) 진산(珍山)이 중수하였으며, 1344년(충혜왕 복위 5) 중창한 곳이다. 무엇보다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천안 광덕사 호두나무가 입구에 자리하고 있는데 거기서 열리는 호두는 꼭 한 번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저 앞에 보이는 나무가 바로 광덕사 호두나무다. 수많은 사찰 중에 호두나무가 사찰 앞에 고목으로 자리하고 있는 것은 처음 본 것 같다. 흔히 은행나무나 느티나무 혹은 향나무를 본 적은 있는데 호두나무는 조금 독특하다. 임진왜란 이전까지는 충청도와 경기도 지방에서 가장 큰 절 중의 하나인 광덕사는 사찰 소유 토지가 광덕면 전체에 이르렀고, 89개에 달하는 부속암자가 있었던 곳이다. 

우리가 흔하게 보는 호두는 호두나무에서 열리는데 호두나무는 중국이 원산지이며 양지바른 곳에서 잘 자란다. 다음달인 9월에 둥근 열매가 익게 된다. 광덕사에 있는 호두나무는 400여 년 정도를 수령을 가졌으며 차나무가 하동에 와서 시배지가 된 것처럼 이 부근이 한반도의 호두나무 최초의 시배지로 그 후부터 호두를 우리 민족이 먹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약 700여 년 전인 고려 충렬왕 16년(1290) 9월에 영밀공 유청신 선생이 중국 원나라라 갔다가 호두나무의 어린 나무와 열매를 가져와 어린 나무는 광덕사 안에 심고 열매는 유청신 선생의 고향집 뜰 앞에 심었다고 한다. 400여 년이 맞는지 700여 년이 맞는지 확인되지 않았지만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천안을 수없이 와보았는데도 불구하고 광덕사를 처음 와보았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하다. 광덕사에는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47호로 지정된 천불전 안에는 천불이 그려진 후불탱화(後佛幀畵) 3점이 있어, 전체 3,000불의 그림이 장엄한 기운을 풍기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꽃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 적 없다."

사찰이 오래된 만큼 그 앞에 있는 석탑도 오래되었다. 통일신라 말이나 고려 초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3층 석탑으로 전체적인 양식과 수법이 균형을 이루고 있다. 1층의 지붕돌이 2층의 몸돌과 하나릐 돌이 되어 있으며 2층의 지붕돌도 3층의 몸돌과 하나로 되어 있다. 지붕돌의 낙수면은 경사도가 심하고 처마의 곡선이 경쾌한 것이 특징이다. 

비가 와서 그런 건지 사람 들어 유독 많이 있는 저곳에는 삼삼오오 모여서 무언가를 먹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점심시간이다. 스님 절 밥맛이 왜 이리 좋은지 묻고 싶은 시간이다. 마곡사의 말사이기도 하지만 광덕사에는 조선조 문종, 세조, 성종, 인종, 명종, 선조, 광해군, 효종, 헌종, 숙종, 경종 등 열한 명의 왕이 쓴 『열성 어필』 1권의 책이 전하고 있다. 

안으로 들어가 본다. 많은 사람들이 공양밥 아니 공양 국수를 먹고 있었다. 이날의 공양 국수는 바로 열무국수다. 여름에 열무국수만큼 시원하면서 진득한 맛을 내는 것도 드물다. 물론 이곳이 사찰이기에 육수는 사골을 우린 것을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해 본다. 밥술도 못 먹일 바에 왜 자길 낳으셨냐는 말이 나올 시절에 뒷산 절집에서 공양밥을 얻어먹을 때가 있었다. 


많은 분들이 이곳에 와서 자원봉사를 하면서 사람들이 공양밥을 먹는 것을 도와주고 있었다. 만찬이라고 말할 정도로 화려한 음식이 가득하지는 않지만 그냥 공양밥을 먹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오래된 한옥 처마에 앉아서 공양밥을 한 그릇 해볼까.

다른 분들의 열무국수는 자작한 국물이라서 국물을 적게 주는 비빔국수인가 했더니 아니었다. 육수는 멸치 다시마 육수 외에도 쇠고기 육수나 닭 육수를 써도 좋지만 사찰이지 않은가. 열무김치는 우유보다 많은 칼슘이 숨어 있고 섬유질과 비타민 A가 다량 함유되어 있어 여름철 땀으로 소진되었던 신체에 시원한 기운을 돋게 해준다고 한다. 

어떤 분들은 음식을 남기기도 하는데 사찰에 와서 먹는 공양밥은 한 번도 남긴 적이 없다. 깨끗하게 다 비워내면 언젠가는 그 공간에 무언가 채워지게 될 것이다. 사찰에서 먹는 공양밥은 아무리 더 먹고 싶더라도 더 먹지 않는다. 1인분은 1인분으로 먹고 더 이상 먹지 않는다. 아쉽지만 그게 맞는 듯하다. 

어느 곳을 보아도 많은 사람들이 그 자리에 앉아서 비가 주적주적 내리는 이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그분들을 보는 재미가 의외로 재미가 있다. 다양한 곳에서 와서 이루고 싶은 것이나 지키고 싶은 것을 빌고 싶어서 왔을 것이다. 

대웅전에는 사람들이 소원이 적힌 연등이 빽빽하게 걸려 있는 것으로 보아 효험이 꽤 좋은가 보다.  조금 더 머물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광덕사는 매력이 있는 곳이었다. 그렇지만 오늘은 요리를 해야 하는 날이기에 생각한 바대로 움직여야 할 듯하다. 그런데 결국 요리는 못했다. 

임진왜란 때 대부분의 건물이 소실되고 나서 다시 중건이 되었다고 하지만 이곳에 와보면 왜 광덕사가 충청도와 경기도를 포함해서 가장 큰 사찰이며 총 본사였는지 알게끔 하는 힘이 있다. 현재 광덕사에는 일주문, 보화루, 대웅전, 범종각, 적선당, 육화당, 고경당, 은적당, 명부전, 산신각, 천불전, 자광당 등의 건물이 남아 있다. 

이날 잘 한 것도 없는데 나오는 길에 떡을 받았다. 공양을 하려고 해도 이날 광덕사에서 공양을 하려면 30분은 충분히 걸릴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을 정도로 공양 인기가 상당했다. 아직 여름이 완전히 물러가지 않아서 그런지 몰라도 광덕사에서 먹은 공양밥 열무국수의 맛은 자극적이지 않으면서 맛이 좋았다. 비가 소박하게 내려서 그런지 아직은 뜨끈한 여름 열기가 남아 있지만 광덕사를 돌아본 것 자체로 충분히 의미가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성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