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행집행인의 딸

삶과 죽음에 대해

누군가를 사형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은 한국에서는 망나니이지만 유럽으로 가면 사형집행인이 된다. 봉건제 국가에서 사형은 대중에게 볼거리를 선사하고 동시에 경고를 주는 메인 행사 중 하나다. 일부 사람을 제외하고 사형당하는 사람의 죽음을 슬퍼하는 사람은 드물다. 죽어 마땅한 사람이었고 때론 환호까지 한다. 사람들이 그런 이유는 무엇일까? 마치 사자가 얼룩말 무리를 사냥할 때 한 마리만 잡혀 죽으면 자신은 무사하다고 느끼는 안도감과 무관하지 않다.


마을이나 국가에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생기면 가장 쉬운 해결방법은 희생자를 찾으면 된다. 중세 유럽에서는 그 대상이 마녀가 되고 냉전시대에는 공산주의자가 되는 식이다. 마녀나 빨갱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사회에서 소외계층일 경우가 많고 남들과 다른 진보적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대부분 사회적 약자다.


올리버 푀치의 작품 사형집행인의 딸은 불합리한 마녀사냥을 해결하는 사형집행인 야콥 퀴슬과 그의 딸인 막달레나와 막달레나에게 반한 남자 의사 지몬의 활약상을 그리고 있다. 책의 제목을 사형집행인의 딸이라고 한 것은 그의 딸이 너무 아름답기 때문이다. 아름답기도 하지만 지혜로우면서 현명한 여성이기도 하다. 중세의 사형집행인의 자식은 같은 일을 하는 사람 하고만 결혼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젊은 의사 지몬의 해바라기 구애가 지속되지만 막달레나는 그가 좋지만 조금은 거리를 두며 그를 밀어낸다.


그들이 살던 크지 않은 마을 숀가우에서는 어느 날 한 소년의 시체가 발견이 된다. 잔혹하게 죽은 소년의 발견은 마을을 발칵 뒤집었고 근거도 없이 마을에서 산파일을 하던 마르타 슈테흘린이 용의자가 되어버린다. 일명 마녀사냥이 시작된 것이다. 마을을 다스리는 시장과 시의원, 법원 서기는 모두 모여 그녀를 마녀로 정의를 해버리고 사형집행인인 야콥 퀴슬을 시켜 그녀를 고문하여 자백을 받아내려고 한다.


야콥 퀴슬은 그녀가 범인이 아니라는 확신을 하고 고문을 최대한 연기하지만 진범을 찾기 위한 시간은 빠르게 지나간다. 진범으로 추정되는 악마와 그를 뒤에서 조종하는 사람을 찾기 위해 야콥 퀴슬과 지몬은 고군분투한다. 마을에서 고아였던 아이들은 한 명씩 죽어나가고 진실은 조금씩 밝혀지기 시작한다. 그 전까지 최대한 고문을 견뎌주어야 하는 마르타 슈테흘린의 고통은 견디기 힘들 만큼 커지기 시작한다.


책의 제목은 사형집행인의 딸이지만 그 딸은 비중은 생각만큼 크지는 않다. 상당히 예쁘다는 표현만 책 속에 가득 넘쳐난다. 대체 어떻게 생긴 여자일까라는 궁금증은 들었지만 그보다 진범을 찾는 것이 우선이니 그 생각을 잠시 접어두고 야콥 퀴슬의 시선을 따라 움직이게 된다.


먼 과거에나 현재나 권력자들은 이익이 되는 일이라면 어떤 무고한 사람이라도 범인으로 몰 수 있는 짐승 같은 야수의 속성을 가지고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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