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역의 거래

금메달과 거래되는 대가

1일 축구팀이 일본을 누르고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그대가로 군대가 면제가 된다. 병역의 거래는 과연 타당한 것인가. 언제부터 우리는 신성한 의무라고 생각하는 병역을 대가로 주기 시작했을까? 국위선양이라는 미명 아래 마치 선물처럼 주어지는 병역면제의 문제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문제는 건강한 남자라면 선택권이 없는 군병역 의무가 특정한 사람들에게는 회피가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가령 축구팀이 금메달을 따면 우리의 생활을 더 나아지는가?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잠시의 통쾌함을 줄 수는 있을지 모르겠다. 스포츠를 한다는 이유로 일반 남성보다 더 의미 있는 활동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냥 직업의 선택에서 스포츠 분야를 선택했을 뿐이다.


모든 사람의 시간은 공평하고 소중하다는 원점으로 돌아가 보면 개인 계발의 가능성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고 봐야 한다. 그것이 공평한 것이다. 어떤 사람은 그 시간을 제대로 활용을 못하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은 충분히 더 나아지고 훌륭해질 수 있다. 그것이 왜 특정분야에만 국한되어야 하고 거래의 대상으로 봐야 하는지 짚어봐야 한다. 병역의 의무를 받아야 하는 시간에 좋은 경기를 보여줄 수 있어서 그 사람이 병역혜택을 받아야 한다면 그것은 의무라고 볼 수 없다.


긴 시간으로 보면 금메달을 따던 국위선양을 하든 간에 그렇게 큰 의미는 없다. 길지 않은 역사 속에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에서 우승했다고 해서 대한민국의 발전에 영향을 미쳤다는 인과관계가 명확하지도 않다. 후진국에서 중진국으로 진입하는 시기에는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선진국의 들어가는 입구에서는 영향이 거의 없다. 그리고 소득 수준이 높아지고 생활수준이 높아질수록 몰빵 하듯이 올림픽에 열광하는 사람의 수는 줄어든다. 즐길 것이 부족하고 여가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모를 때나 TV 앞에서 주야장천 시청할 뿐이다.


스포츠마케팅은 아주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독재정권이 국민을 가장 손쉽게 다스리고 관심을 다른 방향으로 돌릴 때 스포츠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노예를 활용하여 글레디에이터 같은 검투사를 죽음으로 몰아가는 것이나 전두환 정권 때 금메달을 따면 아파트를 한 채씩 주고 연금을 주게끔 만든 것이나 같다. 권력에 문제가 있다는 것에 관심을 덜 가지게 하고 사회의 부조리에서 관심이 멀어지게끔 하는 데 있어서 영웅 만들기만큼 좋은 것이 없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만 가득하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대리만족을 하려는 사람들에게 우상화하고 가능하지 않더라도 꿈을 심어주는 것은 매우 유효한 방법이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원칙으로 돌아가 보자. 누가 개개인의 삶을 마음대로 재단할 수 있을까. 대통령이라고 하더라도 국민을 대리하여 국가를 운영하는 것이지 원리원칙에서 벗어나 자신의 마음대로 개개인의 삶을 재단할 수는 없다. 헌법은 모든 지위와 권력, 경제력을 떠나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적용되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그 헌법을 넘어서는 초월적인 힘을 가진 존재가 있어서는 안 된다.


금메달을 따고 우승을 하는 것은 그 자체로 명예다. 그것이 거래의 수단으로 변질되는 순간 명예는 없어진다. 금메달을 따고 병역을 면제받는 것은 당연한 권리인가?


한국은 명예가 없어져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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