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성장의 도구인가.
야당의 정치인이 기막힌 아이디어를 자신 있게 발표했다. 출산을 하면 한 명당 2,000만 원과 성인 될 때까지 매월 33만 원을 지원한다는 법안을 말이다. 그리고 타이틀을 출산 주도의 성장이라고 붙였다. 어떻게 하면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한국정치의 수준과 그 사람을 뽑아준 유권자의 수준의 바로미터라는 생각도 하게 만들었다.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의 성장을 추진하고 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지만 미래가 있는 삶을 만들기 위해서는 잉여가 되는 소득이 만들어져야 되는 것은 사실이다.
다시 출산의 문제로 돌아와서 왜 한국에 사는 부부들이 출산을 두려워하는가에 대한 본질적인 문제는 외면한 채 마치 여자가 아이를 찍어내는 공장처럼 보고 있을까. 자 소득이든 출산이든 앞에 붙인 단어가 다르지만 성장이라고 하면 경제를 의미한다. 경제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결국 상품과 서비스 등이 많이 소비되어야 한다. 즉 출산 주도 성장이란 여성의 몸을 상품과 서비스를 생산하는 주체로 보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출산을 많이 한다고 해서 경제가 성장된다는 것과 연관성이 전혀 없다.
한국의 오늘날 직장을 구하기 힘든 젊은 층이나 이른 나이에 밀려나간 노년층 모두 자신감을 잃어버렸다. 우울한 '마들렌의 향수'는 한국에 퍼져나가고 있다. 조개 모양의 작은 케이크인 마들렌은 프랑스 북동부 코메르시에서 유래된 빵으로 수녀원의 수녀들이 프랑스 혁명기 중에 형편이 어려워져서 제빵 레시피를 제과점에 팔면서 '마들렌'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설이 있다.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 덕분에 유명해진 빵이다. 즉 그런 향을 맡으며 희망을 보고 싶다는 의미다.
그렇지 않아도 오전에 운동을 하면서 출산이라는 것에 대해 잠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출산의 고통? 혹은 양육의 어려움? 이 모든 것은 부부가 같이 감내해야 할 것들이다. 물론 그 주체는 여성일 수밖에 없다. 모든 아동을 키우고 있는 가정에 월 10만 원도 아깝다면서 소득을 구분해야 한다는 현재 야당이 입법하는 아이디어 치고는 치졸하기 이를 데 없다.
물론 이 사회에 문제는 있다. 이미 자리를 잡은 사람들은 너무나 자주 뒤를 돌아본다. 그리고 변화의 파도가 밀려오는데도 지금의 자리를 떠나려 하지 않는다. 그럴 때 충돌이 일어난다. 그리고 그 충돌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모르게 정보를 뒤섞어 버린다. 새로운 아이디어와 새로운 산업은 효용과 함께 고통을 가져다준다. 진보 정권으로 보이는 정부의 훌륭한 경제 정책도 피해자를 양산하게 된다. 그러나 거시적인 차원에서 수혜자를 더 많이 양산하고 비용보다 더 많은 이익을 창출한다면 지향해야 한다.
출산 주도 정책이라는 입법안을 보고 참 기가 차는 것을 넘어서 기막힌 발상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제 여성의 몸을 공장 삼아 경제를 살린다는 것인가. 한국의 부부가 출산을 꺼려하는 것은 양육하기 힘든 환경도 있지만 자신의 노후를 책임질 수 없다는 것과 같이 가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아이를 가지던 가지지 않든 간에 그것은 온전히 가정의 몫이다. 사회와 국가를 위해 희생하라고 할 수는 없다. 인간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의무 중에 출산의 의무는 없다. 출산을 해서 아이와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것도 출산을 하지 않고 부부끼리 행복한 삶을 이루는 것도 모두 의미가 있다. 그리고 출산 주도의 성장의 도구처럼 사용되는 것은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고 해도 무모한 아이디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