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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Sep 08. 2018

정자

예산 일산이수정(禮山一山二水亭)

조선시대에 지어진 건축물은 모두 목조를 기본으로 했는데 하부에는 돌로 네모반듯하게 다듬어서 기단을 만들고 나무로 기둥을 세우고 대들보를 걸고 서까래를 얹어 경사진 지붕을 올리고 지붕 위에 기와를 얹었다. 건물은 기단과 몸체, 지붕 세 부분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목조건물의 기본이다. 정자 또한 그렇게 만들어진다. 정자가 만들어지면 현판을 다는 일이다. 일산이수정에 있는 현판은 추사 김정희 선생이 제주도 귀양에서 풀려난 다음 해 이곳에 초대를 받아 며칠 머물면서 쓴 것이다. 

익은 벼가 고개를 숙이기 시작하는 이때에 오래간만에 다시 예산의 일산이수정을 방문해 보았다. 일산이수정은 근처의 도로에서도 한참 안쪽으로 들어와야 있는 곳으로 올라가서 보는 경관이 그럴듯하게 펼쳐진다. 정자는 예산의 달천(達川)과 청양군 운곡면에서 흐르는 죽천천이 만나 예당저수지로 흘러들어가는 지점의 작은 동산 위에 세워진 건물 주위의 지형지세를 보고 ‘일산이수정(一山二水亭)’이라고 지었다. 즉 하나의 작은 산과 두 개의 천이 합쳐진 곳에 세워진 정자라는 뜻이다. 

하늘이 저렇게 맑은 것을 보니 가을이긴 한가 보다. 올라가는 길목은 좁으니 차를 가지고 올라가는 것보다는 걸어서 올라가야 한다. 일산 이수정은 한 집안의 교육을 위한 건물로 세워졌지만, 1920년 경에는 국문 강습소가 개설되었고, 1923년에는 현 신양초등학교의 전신(前身)인 신양 공립 보통학교 개교 시에는 창립 교사(校舍)로 활용되기도 했다. 

일산이수정은 1849년(헌종 15) 경 이철수(李喆洙, 1824∼1896)에 의해 건립된 전주 이씨의 서당으로 건립되었는데 그 당시에는 서계양리에 거주하고 있는 전주 이씨 집안만이 자녀교육을 위하여 건물을 세우고 훈장을 초빙하여 교육을 했다고 한다. 현재 이 정자는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82호로 지정되어 있다. 

궁궐 등의 건물에 달리는 어필 현판은 각별히 취급되기도 했지만 양반 가문의 현판도 상당히 중요했다. 당대의 명필에서 글을 써달라고 해서 다는 것을 명예롭게 여겼다. 이렇게 검은 바탕에 흰색으로 글씨를 쓰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궁궐의 중요 전각은 이 보다 한 단계 격식을 높여 검은 바탕에 금으로 글씨를 쓰고 옻칠을 한 다음 금박을 입혔다. 검은 바탕에 금색 글씨가 가장 높고 그다음으로 검정 바탕에 흰 글씨, 가장 낮은 건물이나 출입문에는 흰 바탕에 검은 글씨로 한다. 

일산이수정의 대청에 잠시 앉아서 바깥의 풍경을 감상해본다. 멀리 펼쳐지는 논과 밭이 한눈에 들어온다. 주변을 돌아보면 파노라마 같이 확 펼쳐지는 것이 가슴이 확 트이는 기분이다. 


가정을 바로하는 것은 바로 가르치는 일이다. 학문하는 방법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잃어버린 마음을 찾는 것이라고 했다. 집안의 교육을 위해 일산이수정을 세웠던 가문은 인은 사람의 마음이고 의는 사람의 길이라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 했을 것이다. 


오곡은 곡식 중에서 좋은 것이기는 하지만 여물지 않으면 비름이나 피만도 못하다. 인의 가치 역시 여물게 하는데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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