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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Sep 12. 2018

돈암서원

도리의 맛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사람은 누구나 먹고 마시기는 하지만 맛을 제대로 알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  중용 - 


논산에 자리한 돈암서원은 타협을 통해 조화로운 사회를 만들려고 노력했던 사계 김장생의 생각이 이어져 오는 곳이다. 산과 같은 사계 김장생 선생이 서울 돈암동에서 연산으로 낙향한 것은 1596년이다. 주자의 만년 호는 돈웅으로 주자를 따르려는 김장생은 그 생각을 제자에게 전했다. 


돈암서원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지금 공사 중이라서 지근거리까지 차를 가지고 들어갈 수는 없다. 조금 먼 곳에 차를 세우고 들어가 본다. 돈암서원은 바른 성품을 기르는 집이라는 양성당과 동재는 거경재, 서재는 정의재, 보몰 제1569호로 지정되어 있는 응도당이 중심 건물로 자리하고 있다. 돈암서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창건한 김집의 사당이 있다. 사계 김장생의 아버지인 김계휘는 영남 감사였는데 300석을 내려 유생들이 학문에 정진할 수 있도록 경희당을 지어주었다. 

서원이 지역 이기주의로 자신들만의 사람을 키우는 데 사용되었던 근본적인 문제는 있었으나 과연 흥선대원군이 백성들을 위해 서원을 철폐하였는지는 생각해볼 일이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열대야의 밤이라는 선물을 주었던 여름이 지나가고 아침과 낮으로 쌀쌀한 계절이 돌아왔다.  흰 이슬이라는 뜻으로 이때쯤이면 밤에 기온이 이슬점 이하로 내려가 풀이나 물체에 이슬이 맺히는 데서 유래한 백로가 지난 지 벌써 여러 날이 되었다. 

충남에서 이 정도 규모를 가진 서원은 많지 않다. 그리고 근접성이 좋은 곳으로 돈암서원만 한 곳도 드물다. 돈암서원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김장생은  1553년(명종 9년)에 아버지 김계휘는 윤원형 일파, 심통원 일파 등 조정의 척신들에게 미움을 받고 인사 불이익을 당하면서 평탄하지 않은 소년기를 보내게 된다. 그렇지만 소년 시절 김장생은 “행동거지가 점잖고 진중하며 말과 웃음을 함부로 하지 않았다”라고 한다. 학식이 있는 사람들은 그의 어린아이 답지 않은 조숙함을 보고 이를 그릇됨을 알았다고 한다. 

돈암서원은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훼철(毁撤)되지 않고 존속한 47개 서원 중의 하나이며, 경내의 건물로는 사우(祠宇)·양성당·응도당(凝道堂)·장판각(藏板閣)·정회당(靜會堂)·산앙루(山仰樓)·내삼문(內三門)·외삼문(外三門) 등과 하마비(下馬碑)·송덕비(頌德碑)가 있다. 특히 응도당은 돈암서원을 상징하는 건물로 그 기세가 남다르다. 

성실함은 하늘의 도이며 성실해지려고 함은 사람의 도라고 한다. 성실해지려고 하는 사람은 선한 것을 택해서 굳게 그것을 잡는 사람이다. 성실해지려고 하는 사람은 폭넓게 배우고, 자세하게 묻고, 신중하게 생각하며, 분명하게 변별하고, 돈독하게 행햐여야 한다고 한다. 모든 배움에 있어서 배울 바엔 능숙해지지 않고서는 그치지 않아야 한다는데 그것이 쉽지 않은 일이다. 

항상 깨끗하게 정리를 해두어서 머물기에 좋은 곳이 돈암서원인데 세계유산으로 신청한 ‘한국의 서원’은 소수서원(경북 영주), 도산서원(경북 안동), 병산서원(경북 안동), 옥산서원(경북 경주), 도동서원(대구 달성), 남계서원(경남 함양), 필암서원(전남 장성), 무성서원(전북 정읍), 돈암서원(충남 논산) 등 총 9개로 구성된 연속 유산으로 그중 돈암서원이 들어가 있다. 

사계 김장생은 1717년(숙종 43년) 연산의 돈암서원(遯巖書院)을 비롯해 해주 소현 서원(紹賢書院), 파주 자운서원(紫雲書院), 안성의 도기 서원(道基書院) 등 10개 서원에 배향되었다. 


"도가 행하여지지 않는 이유를 나는 안다. 지혜로운 사람은 너무 지나치고 어리석은 사람은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도가 밝게 드러나지 않는 이유를 나는 안다. 현명한 사람은 너무 지나치고 못난 사람은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 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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