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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Oct 02. 2018

인생 2막

문경 진안요

은퇴 중년에 버킷 리스트에는 무엇이 담겨 있을까. 버킷 리스트에 무언가를 담을 여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그래도 행복한 편이다. 평균수명은 늘었지만 양질의 일자리는 사라지고 사회에서는 빨리 밀려나가는 것이 요즘의 현실이다. 문경에는 유독 많은 사기장과 가마들이 많다. 막사발을 구어 대를 이어오는 사람들이 많기에 인생 2막은 여전히 도자기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문경새재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진안요는 인생 2막을 생각하시는 문경분이 만든 곳이다. 작년에 도자기 체험 겸 다양한 용도의 활용 공간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오랫동안 문경 도자기 박물관장으로 근무하다가 이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다고 해서 이곳에 집을 짓고 도자기 가마를 만들었다고 한다. 

사실 인생 2막이 정해져 있는 것은 없다. 자 이 나이까지 살면 1막이고 그다음은 2막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보통은 직장생활을 할 때는 전자라고 하고 자신의 평생 업을 만들면 후자라고 보통 말한다. 은퇴 후 인생 2막을 맞은 이들이 꼽은 버킷리스트 중 압도적인 1위는 여행이라고 하는데 때론 고생스럽고 불편하지만 당찬 도전이 비로소 결실을 볼 수 있는 것이 인생이다. 


문경은 참 여행지로 괜찮은 곳이다. 산세도 좋고 그 앞에 이렇게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고 너른 마당을 가지고 있는 진안요 대표분은 이제 인생 후반을 살기 시작했다. 

살고 있는 집 옆에는 도자기 체험장이 있다. 주말이면 가족단위로 이곳을 찾아와 체험하는데 보통 물레로 하는 것은 오래 걸리기 때문에 판으로 만든 도자기 성형을 주로 체험하게 한다. 

사회의 수많은 메시지와 광고들을 보면 행복한 인생 2막을 준비하라는 메시지보다는 협박성 정보가 너무 많다. 회색 쇼크, 고령 사회, 넉넉지 않은 살림, 노후를 위해 얼마의 돈이 필요하다는 둥 노후를 위해 보험을 들고 창업을 하라고 자꾸 권한다. 모든 것이 본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대기업과 프랜차이즈 본사의 이익을 위해서인 경우가 많다. 

진안요에서 직접 재배했다는 차도 한잔 마시면서 진안요를 만들게 된 이야기를 들어본다. 문경도자기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오랜 시간 박물관장을 하면서 자신만의 삶을 살지 못했는데 이제는 자신만의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에 바지런하게 이곳을 꾸몄다고 한다. 

특히 오미자 구운 소금은 인기가 많은데 소금을 구울 때 1,200도가 넘으면 모든 불순물이 타서 없어지기 때문에 몸에 안 좋은 것은 모두 사라진다고 한다. 그래서 소금 가격이 상당히 비싼 편이다. 게다가 소금을 구우면서 들어가는 오미자의 양도 상당하기 때문에 팔아도 별로 남는 것이 없다고 한다. 

명색이 도자기를 굽는 곳이니 도자기 구경을 안 할 수가 없어 이곳저곳에 있는 도자기를 감상해본다. 유약칠이 잘 묻어 나온다. 같은 흙으로 빚어도 도자기는 구워서 나오는 순간 모두 색이 다르다. 똑같이 태어났지만 삶에 따라 색이 달라지는 사람과 비슷하다. 

10월이면 문경에서는 사과축제가 열리는데 이미 사과는 나오기 시작했다. 

체험하면서 만든 그릇들이다. 크고 작고 색깔도 다르고 생김새도 다르지만 모두 무언가를 담을 수 있는 형태다. 

사과 하나를 들어본다. 문경사과는 이맘때면 와서 가져가 먹어보지만 역시 산지에서 만들어지는 사과가 맛이 좋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소금이 구워지면 이런 결정을 이루는데 1,200도가 넘는 열을 견뎌내고 만들어진 소금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나니 이 소금이 조금은 탐이 났다. 

한국에서는 볼품없는 그릇으로 천대를 받는 대신 일본에서는 이도자완(井戶茶碗)으로 뿌리를 내리며 수 점씩 국보로 지정된 막사발은 청자, 백자 등에 가려져 제 빛을 보지 못했었다. 사람에 귀천이 없듯이 똑같이 흙으로 구워져서 사람들 속으로 스며들어 함께 했던 막사발의 가치가 더 의미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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