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는 누군가 Oct 04. 2018

한국 100년 시

백석대학교 현대시 100년관

100년이라는 세월은 한 세기이면서 세대로 말하면 삼대가 함께하는 시간이다. 평균수명이 늘면서 100세 시대를 넘어갈 것이라는 전망도 있지만 아직까지 100년은 인간으로서는 한 획을 그을 수 있는 긴 시간이다. 현대시가 태동한 지 100년이 넘었다. 천안 백석대학교에는 100년의 역사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현대시 전시관이 있다. 특히 그곳에서 눈에 뜨인 시은 이것이었다.


"떪은 사랑일 땐 준 걸 자랑했으나 익은 사랑에선 눈멀어도 못다 갚을 송구함 뿐이구나." 요즘에 느끼는 것이다. 주는 것보다 더 많이 주어도 아깝지 않은 대상도 세상에는 있다. 그리고 그건 자랑할 것이 아니다. 나이가 들었다고 해도 깨달아지는 것도 아니다. 

시를 많이 접해봤지만 대부분 그 감성을 느끼는 척해보려고 하지 않았을까. 현대시의 역사에서 주옥같은 시들이 이곳에는 시와 그림으로 표현이 되어 있다. 한 슬픔이 다른 슬픔에게 손을 주고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의 그윽한 눈을 들여다보는 이야기부터 인생, 사랑, 가족, 친구, 연인 모든 것이 시속에 그려있고 쓰여 있다. 

현대시를 처음 시작한 시인들도 처음부터 시를 쓴 것이 아니라 오래전 사람들의 시에서 배우고 현대를 살아가는 느낌과 함께 씨줄과 날줄을 엮어서 글로 표현했다. 그리고 시대가 지나고 일본강점기, 광복, 한국전쟁, 독재의 시대, 민주화를 거쳐 다양한 미디어가 등장하면서 시는 그 시대를 반영해 왔다. 

그림과 시를 같이 감상한다는 것은 그만큼 깊이가 더해질 수 있다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그 시에서 어떤 감성이나 자신만의 느낌을 전달할 수 있는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지만 그걸 보는 사람들의 해석은 모두 다르다. 

시를 읽고 어떤 것을 느끼고 그것을 분석하는  것은 대학교 들어갈 때 국어 교과서를 쪼개고 분석할 때나 필요하다. 점수는 줘야 하니 시의 감성을 표준화했을 뿐이라고 해야 하나. 감성은 표준화될 수 없고 표준화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산과 바다를 그린 것을 보고 하나의 시를 접해도 좋고 시를 읽은 다음 그림을 접해도 좋다. 

일반 소설이나 실용서, 다양한 책이 있지만 시집은 그 비율에 비해 적은 편이어서 이렇게 한국의 현대시를 대표하는 시인이 많다는 것도 또한 놀랍다. 하늘 그림 - 문현미, 가전 것 하나도 없지만 - 김광규, 삽 - 정진규 등 모두 처음 접하는 시인들이다. 

이렇게 오래된 서적이 있는 곳으로 와야 익숙한 이름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사슴 - 노천명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언제나 점잖은 편 말이 없구나

관이 향기로운 너는 

무척 높은 족속이었나 보다.


물속의 제 그림자를 들여다 보고

잃었던 전설을 생각해 내고는

어찌할 수 없는 향수에

슬픈 모가지를 하고 먼 데 산을 바라본다.

소설도 그렇지만 시 역시 우리 문화의 정신사의 꽃이다. 한국 현대시 100년관에서는 대표 시인의 초상화와 시인의 대표 시, 당대 발간된 시집을 연대순으로 만나볼 수 있는데 공간은 그렇게 크지는 않지만 제대로 보려고 한다면 몇 시간은 훌쩍 지나가버리는 곳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피그말리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