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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Oct 07. 2018

코스모스 꽃잎

아산 봉곡사 천년비손길

오래간만에 다시 찾아가 본 아산 봉곡사는 아래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걸어 올라가야 그 맛을 알 수 있는 여행지다. 주차장에서 봉수산 능선에 이어지는 천년비손길은 오돌개마을 장군바위의 전설과 베틀바위, 오형제고개를 고스란히 만날 수 있는 곳으로 숲길과 휴게소에서 지풍골에 이르는 시골길등 다양한 길을 오감을 통해 느낄 수가 있다. 

봉곡사는 약수를 비롯하여 올라가는 길목에 울창하게 우거진 소나무로 인해 유명한 사찰이기도 하다. 신라 말 도선(道詵)이 창건하였고, 1150년(의종 4) 보조국사(普照國師)가 중창하여 절 이름을 석가암(釋迦庵) 또는 석암(石庵)이라고 불리다가 1584년(선조 17) 3월 거사 화암(華巖)이 중수하여 봉서암(鳳棲庵)이라 하였고, 1794년(정조 18) 경헌(敬軒)과 각준(覺俊)이 대웅전을 증수하고 봉곡사라고 불리게 된다. 

아산 봉곡사에 있는 소나무들은 일제 강점기의 흔적을 고스란히 남기고 있었다. 2차 세계대전 말기에 기름이 부족했던 일본은 한반도에 있는 소나무들에게서 송진을 채취하기 위해 소나무의 껍질을 벗기고 채취하였다. 그리고 그 흔적은 전국의 오래된 소나무들이 있는 곳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봉곡사를 올라가는 시간은 동일하게 흘러가는 것 같지만 모두 다르다. 봉곡사로 걸어가는 한 걸음은 보통 1미터가 채 되지 않는다. 실제로 1미터는 빛은 세슘 원자시계로 측정했을 때 0.00000003335640952초 동안의 달린 거리로 규정된다.  

봉곡사는 다산 정약용(1762~1836)이 10여 일 기거하며 이익의 사상과 문집을 정리하는 강연회가 열렸던 장소이기도 하다. 다산 정약용은 서암 강학기(西巖講學記)에서 당시 봉곡사 일대의 풍경을 담았다. 시간이 지나가면서 누군가는 흔적을 남기고 그것은 읽힐 수 있는 글로 표현이 된다. 

길은 동물이나 사람에게 모두 통로의 역할을 한다. 전국에 있는 아름다운 길을 걷는 이유는 통로를 지나면서 다른 풍광과 모습 그리고 온기가 도는 공간은 공유한다. 공주의 마곡사처럼 대사찰은 아니지만 아산 봉곡사는 화려하지는 않다. 그렇지만 조용한 사찰의 여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정조 때 인재였던 다산 정약용은 정조가 세상을 떠나기 전 5년 전  1795년 겨울 정 3품 당상관에서 종 6품 금정찰방(金井察訪)으로 좌천된다. 

아산 봉곡사에 현존하는 당우로는 3칸의 대웅전을 중심으로 서쪽에 향각전(香閣殿)이 있고 동쪽에 선실(禪室)이 있으며, 선실과 연결된 요사채가 있다. 봉곡사의 대웅전 안의 후불탱화는 그 유래가 특이한데 세로 75㎝, 가로 43㎝인 이 관음탱화(觀音幀畵)는 조선시대의 작품으로 원래 이 절에 봉안되어 있던 것이었는데, 1909년에 이 절에 있던 병든 승려가 약을 준 일본인에게 완쾌된 뒤 선물하여 일본으로 건너가게 되었다고 한다. 

봉곡사는 선승인 만공스님의 흔적이 남아 있는 사찰이다.  만공스님은 23세 때 이곳 봉곡사로 왔는데 성호 이익의 증손자인 이삼환 등 13명의 실학자와 봉곡사에서 공자를 논하고 성호 이익의 유고를 정리하는 강학회를 정약용이 열면서 인연이 이어졌다. 

봉곡사의 가을은 이렇게 피어났다. 봉곡사 천년길은 코스모스 천년 길이라고 불러도 될 만큼 화사하게 피어났다. 꽃이라는 이름의 코스모스는 책으로 인상 깊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중력 가속도가 감소할수록 물체의 무게는 가벼워지는데 중력이 0에 근접하게 되면 마시던 물의 작은 물방울은 커다랗게 부풀어서 맥동하면서 퍼져나간다. 코스모스의 하늘하늘한 꽃잎은 아주 작은 힘 만으로 중심에 매달려 있다. 

아산 봉곡사의 주변에는 적지 않은 코스모스가 심어져 있다. 천년이라는 세월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오갔을까. 

아리스토텔레스는 가벼운 물체보다 무거운 물체가 먼저 낙하한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지구가 무거운 물체를 더 큰 힘으로 끌어당긴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공기저항을 제외한다면 모든 물체는 동일한 속도로 떨어진다. 공기저항이 없는 달 위에서는 납덩어리와 이런 하늘하늘한 꽃잎이 똑같은 속도로 떨어진다. 시간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속도로 흘러간다. 그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의미가 있을 수도 있고 그냥 빠르게 지나간 순간으로만 기억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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