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이 바라셨다. 돈을...
지금의 기독교가 한국에 들어오게 된 것은 100여 년 전이다. 그런데 서울 대형교회의 목사는 이런 말을 했다. 세월호 참사를 대한민국을 구하기 위해서 아이들을 희생시킨 것이라고 말이다. 단군조선시대까지 올라간다면 5,000여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한반도를 한 번도 챙겨주지 않다가 4,900년이 지나고 나서야 이제야 챙겨주기 시작했다는 말인가? 아니면 너무나 변방의 소국이라서 미쳐 신경 쓰고 못하고 있다가 최근에서야 신경을 써주는 것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그 말을 받아들일만한 사람이 없을 정도로 미개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가 100여 년 전부터 비로소야 그 진의를 이해하고 받아 들일 수 있는 능력자(목사)가 나타난 것인가.
모든 것을 차치하더라도 종교로서의 믿음이나 삶의 철학으로 접근하는 것이야 자유이니 상관은 없다. 그러나 사람이 모이고 그것을 빌미로 개개인의 사익을 추구하고 심지어는 공권력에 영향을 미치며 정권을 창출하는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면 그것은 문제가 크다.
솔직히 주변에서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들이 믿음 = 순수함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믿음 = 내가 잘 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 돈을 잘 벌게 해 줄 것, 내 자식을 좋은 곳으로 보낼 수 있을 것.. 등등.. 이것까지는 사람이니 그럴 수 있다 치자. 그러나 교회라는 조직이 커지면 커질수록 그 속에서 무언가를 얻으려는 사람들이 생긴다. 있어서는 안 될 청탁을 하는 사람이나 이권을 챙기려는 사람들이 속속들이 그 속에 모여든다. 그리고 그 가치는 대부분 사회적 지위나 돈으로 매겨진다.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고난의 길을 갈 때 금을 같이 짊어지고 걷지는 않았다. 물론 그렇게 했다면 무척이나 힘들었을 것이다. 지금처럼 돈이 숫자로 표시된다면 십자가 옆에다가 살짝 끼워놓고 걸었을까? 필자가 생각하기에 예수의 희생은 숭고했다. 모든 이들의 죄를 자신의 죽음으로 사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런데 십자가와 고난을 짊어진다면서 숫자가 찍힌 통장도 같이 가지고 가는 사람들이 있다.
신기한 일이다. 어떻게 하느님의 말을 재치 있게 재해석해서 자신의 생각대로 만들어내는지 말이다. 간혹 시사프로에서 그들이 설교하는 것을 보면 기가 차다. 그리스 시대에 달변가나 궤변가 수준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공감이 되지않을만한 이야기나 낯 뜨거운 이야기는 삼가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내용을 아주 저렴하게 잘 이야기한다. 그걸 듣고 아무렇지 않게 있는 신도들도 신기한 건 마찬가지다.
성경을 다 외우지는 못해도 성경에 어떤 내용이 담겨 있는지 종교의 역사가 어떻게 되는지 천주교, 기독교, 이슬람교, 힌두교, 불교 등 적어도 일반 사람들의 수준은 많이 넘어설 정도는 안다. 그런데 신이 돈을 바라셨다라던가 자신의 말을 전하는 이를 부유하게 하라라는 글귀는 본 적이 없는데 아직 못 찾은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