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포구와 이병주
문학하기 좋은 계절이 왔다. 에어컨에 의존하지 않아도 너무나 좋은 온도와 분위기가 지금 이때다. 아쉬운 것이 있다면 짧아서 아쉽다는 정도다. 문학인들에게는 자신의 정서에 맞는 지역이 있다. 조용하면서도 무언가의 영감을 주는 그런 곳으로 여수나 하동, 통영 등은 무언가 글이 잘 써질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하동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곳 중에 하나가 바로 하동포구다.
하동은 섬진강에서 이어져서 남해로 나가는 바다의 길이 무려 80리에 이른다고 한다. 이른바 하동포구 80리라고 하는데 km로 환산하면 20km에 이른다. 하동군 금남면 노량에서 금성면 갈도 해상을 거쳐 섬진강 하구를 지나 하동읍 광평리 하동포구 공원까지의 뱃길이 하동포구 80리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다른 물길을 말하는 사람도 있다. 어디에서 어디로 이어진들 하동은 여행지이면서 글쓰기 좋은 곳이다.
하동포구에 대한 기록을 역사 속에서 찾아보면 '세종실록 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제31권 하동현 편에 “합진(蛤津)은 현 서쪽 5리 지점에 있으며 조수가 드나든다.”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지금은 한적한 하동포구지만 수많은 배들이 이곳을 통해 거슬러 올라가고 아래로 흐르듯이 흘러내려갔다. 부의 서쪽 수리쯤에 있으며 근원은 전라도 순창·보성·남원에서 물길이 시작되어 곡성현 압록원에 이르고, 구례를 지나 화개동에 이르러 쌍계수와 함께 모여 깊은 강이 되는데 이 강이 섬진강이다. 이후 호남과 영남의 경계를 틔워 부의 서남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가니 조수가 백여 리를 거슬러 올라온다.
하동 하면 대표하는 문학가로 이병주가 있지만 하동포구에 대해 많이 언급했던 문학가로 길지 않은 생애를 통하여 주옥같은 동화와 동시, 동요 등을 남겼으니 광복의 해인 1945년에 작품집 '어깨동무' 1집을 내고 1946년에 '어깨동무' 2집을 출간하였다. 1948년에 세상을 떠난 남대우가 있다.
하동포구에서 동북쪽으로 올라가면 북천역이 나오고 이명산 기슭에 이병주문학관이 있다. 하동을 대표하는 문학가인 이병주의 문학세계는 하동과 닮아 있다. 이병주의 문학세계를 보면 알프스에서 시작하여 골짜기를 돌아 산하에 자신의 혼을 새기며 생을 마감한 것을 볼 수 있다.
- 나폴레옹 앞에는 알프스가 있고 내 앞에는 발자크가 있다.
- 역사는 산맥을 기록하고 나의 문학은 골짜기를 기록한다.
- 태양에 바래면 역사가 되고 월광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
큰 산이 있으면 깊은 골짜기가 생긴다. 큰 강이 되려면 수많은 실개천이 모여야 된다. 골짜기가 깊기 위해서는 산이 높아야 하며 강이 넓고 깊게 되기 위해서는 수많은 실개천과 함께 흘러야 한다. 하동에는 지리산에 걸맞은 하동포구 80리 뱃길이 있다. 지리산·섬진강·남해에 결코 뒤지지 않은 하동 문화의 뿌리와 같은 역할을 하기 위해 바다와 들, 산을 하나로 이어준다.
하동포구와 작가로서의 이병주의 세계관을 보면 그의 문학은 골짜기를 기록했다고 하는데 작가적 사명감이 무엇인지 살짝 엿보게 해 준다. 이병주의 문학은 인간이라는 존재에 앞서 모든 이데올로기에 대한 것을 반대하고 있다. 사상이나 이념이 인간이라는 존재를 왜곡하고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은 끊임없이 던지고 있다.
무언가를 매혹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비범한 창작력이 필요하다. 앞서 흐르는 물은 이미 바다로 나갔지만 하동포구로 끊임없이 흐르는 물은 새로운 생각을 하기 위해서는 비울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다. 나루터를 하동 사람들은 ‘나릿가’라고도 한다. 나루의 교류와 소통에 기여했던 그 기능은 문화적으로 분리적 요소를 담고 있는 섬진강을 극복하고 하나의 문화권을 설정할 수 있게 해 주었다. 하동 나루터와 이병주의 문학세계의 연결성이 의미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