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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Oct 19. 2018

사찰의 가을

금산 태고사

태고사를 얼마만에 다시 오게 된 건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태고사는 조금 특이한 느낌의 사찰이다. 사찰의 규모는 크지는 않지만 가을에 오면 멋진 풍광을 만날 수 있어서 여행지로는 제격이다. 태고사는 해골물로 유명한 원효가 창건한 사찰이다. 배움이나 깨달음은 장소나 제약을 가리지 않고 찾을 수 있다는 단순하지만 단순하지 않은 깨달음을 얻었던 원효는 이곳을 발견하고 너무나 기뻐서 3일 동안 춤을 추었다고도 하며, 한용운(韓龍雲)이 대둔산 태고사를 보지 않고 천하의 승지(勝地)를 논하지 말라라고 하기도 했다.

태고사는 가장 가까운 곳에 차를 세우고도 10여분은 걸어서 올라가야 한다. 가을단풍의 울긋불긋한 색감이 태고사로 올라가는 길목에 수를 놓고 있다.  

사람들은 성인이 되어서는 깨달을 것이 별로 없다고 생각하고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깨달음은 인간이 유일하게 동물과 구분될 수 있는 길이다. 제대로 모르고 있던 사물의 본질이나 진리 따위의 숨은 참뜻을 비로소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돈을 벌기 위해 기능을 배우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걸어서 올라오다 보니 오래간만에 보는 석문이다. 말그대로 자연이 만들어놓은 돌로 된 문이다. 처음에 이 석문을 보았을때 참 특이하다라는 생각과 함께 무언가 다른 세상으로 가는 문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태고사에서 100여미터 떨어진 곳에 돌로된 석문에는 우암 송시열 선생이 친필로 석문이라고 쓴 것이 음각되어 있다. 

석문을 우회해서 갈수도 있지만 태고사로 들어가거나 나가는 길은 석문으로 가야 제맛이다. 석문으로 나와서 걸어서 올라오니 가을세상이 펼쳐진다. 

태고사는 조선 중기에 진묵(震默)이 중창했는데 송시열(宋時烈)의 수학지(修學地)로도 유명한 이 절은 6·25 때 전소된 것을 주지 김도천(金道川)이 30년 동안 이 절에 머무르면서 대웅전·무량수전(無量壽殿)·요사채 등을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태고사의 이 풍광은 말그대로 절경이다. 마치 떠 있는 건물과 그 아래로 펼쳐지는 가을 단풍이 잘 어울린다. 그리고 좌측으로 계단이 마치 하나의 조각과 같은 역할을 한다. 

대둔산의 기기묘묘한 형태의 암봉들이 병풍처럼 첩첩 쌓여 있고 산전체가 마치 잘 가꿔 논 분재같아 보인다. 호남의 소금강이라는 대둔산은 전국 12승지 절터중 하나라는 태고사와 궁합이 좋다. 우거진 산림속에서 산림욕뿐만이 아니라 멋진 경관은 덤이다. 

태고사의 영험설화로는 전단향나무로 조성된 삼존불상을 개금(改金)할 때 갑자기 뇌성벽력과 함께 폭우가 쏟아져서 금칠을 말끔히 씻어 내렸다는 전설과 잃어버린 태고사 불궤에 얽힌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태고사라는 사찰보다 그 자리가 더 탐이 나는 바로 이곳은 가장 짧은 시간에 멋진 가을을 만날 수 있는 명소다. 멀리 지리산이나 설악산까지 가지 않아도 멋진 풍광을 즐길 수 있다. 

온 사방이 산이다. 첩첩히 중복된 산능선이 온 시야를 가득채운다. 한 낮에도 멋진 풍광을 볼 수 있지만 해가 질때면 어떻게 그려질지 예상할 수 없는 한 폭의 가을 명화를 감상할 수 있기도 하다. 매일매일 다른 명화를 틀어주는 태고사의 풍광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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