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주반지를 낀 페미니스트

미움받을 용기는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이 책은 절반 이상이 종교적인 관점에서 쓰인 책이다. 그러면서 중간중간에 여성이 차별받으면서 고통받고 있는 현실을 각종 사건사고를 언급하면서 설명하고 있다. 우선 저자가 생각하는 페미니스트 관점에서 모두 동의한다고 볼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균형적인 생각을 할 필요성은 있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종교의 창시자는 모두 남자였다. 그렇다면 남자가 창시한 종교에서 굳이 어느 정도의 지위를 차지하기 위해 투쟁하고 머물러야 할까? 필자의 경우 어느 조직에 있든 간에 그 조직이 바르지 못하고 차별적이라면 그냥 떠나버렸다. 굳이 그곳에 연연해하며 나의 시간을 소모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것은 필자의 생각이고 저자는 천주교, 불교, 이슬람, 유교를 가리지 않고 여성의 지위를 확보하기 위한 다양한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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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와 남자를 떠나 사회적으로 불편과 차별적인 시선을 감내하면서도 머무는 이유는 미움받을 용기 혹은 사회적 시선에 자유롭지 못한 경우가 많다. 얼마 전 지인과의 대화에서 벌초에 대한 대화가 나온 적이 있었다. 그 집안은 여자인데도 불구하고 벌초에 동원되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일은 하고 제사에는 절도하지 못하게 한다고 했다. 이 책에서도 제사문화에 대해서 언급을 한다. 개인적으로는 벌초는 관련된 형제자매끼리 돈을 모아 벌초대행을 시키는 것이 가장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유교를 언급하면서 정성을 말하기도 했지만 유교문화에서 벌초는 양반들 집안에서 주로 이루어졌다. 양반들은 자신이 직접 벌초를 하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 하인을 시켜서 했다. 그럼 벌초를 직접 하는 집안은 하인 집안이라는 소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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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역할론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산다는 것을 보게 된다. 지금도 여러 곳을 가서 남자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자기 프레임에 갇혀 변화를 거부하는 것을 보게 된다. 필자가 요리를 하는 이유는 본인도 그렇지만 먹는 사람이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고 회복되는 것이 가치를 부여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요즘에는 젊은 여성분들도 요리를 못하는 사람이 참 많다. 남자와 여자를 떠나 요리는 하는 사람과 먹는 사람의 소통이다. 그 소통의 가치를 알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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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시사프로 등이나 뉴스에서 많이 등장해서 알겠지만 종교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폭력이나 성폭력이 난무함을 알 수 있다. 책에서도 그 부분을 지적하는데 많은 할애를 했다. 종교라는 색안경을 쓰고 바라보면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어느 정도 납득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큰 울타리에 들어가려고 하는 동물은 초식동물들이다. 강한 동물은 울타리에 갇혀 무리 지어 지내지 않는다. 혼자서도 충분히 이겨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약하다고 해서 초식동물이 착한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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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자궁에 대한 자기 결정권이 여성에게 있다는 것에는 동의를 한다. 그렇지만 생물학적으로 여성의 지위를 부여받은 이상 어쩔 수 없이 남성보다는 신중할 필요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지금은 조금 바뀌어가고 있지만 여전히 여성은 결혼과 출산이라는 것을 암묵적으로 사회와 가족에게 강요받고 있는 것도 맞다. 자궁에 대한 자기 결정권도 존중하되 여성들도 왜곡된 결혼이라는 관점이나 사회적 시선에서 미움받을 용기를 가지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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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저자가 말한 것처럼 유교문화는 생각만큼 갇힌 문화는 아니었다. 조선 말기 기득권들에 의해 왜곡되고 일제 강점기에 이해받지 못하면서 어설프게 그 잔재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종갓집 같은 문화는 여성과 남성의 역할이 구분이 되어 있었을 뿐이지 불평등의 문화가 아니었다. 성향의 차이였고 역할이 달랐을 뿐이다. 성향적으로 남성의 성향이 강한 여성이 있을 수도 있지만 봉건시대에 있어서 삶의 한 방식이었을 뿐이다. 유교의 가부장적인 것을 주장하는 남자 중에 유교나 역사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드물다. 그냥 우기는 것에 불과할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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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와 소통을 통해 균형적인 시각을 가질 때가 온 것은 사실이다. 필자의 경우 여성에게 손에 닿을 거리에 있어서 도움을 요청하면 움직여도 적극적으로 보호해야 하는 존재로 보지는 않는다. 남자들 상당수는 적극적인 보호를 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 이면에는 책의 저자가 말한 것처럼 여자를 약한 존재이며 남자보다는 못한 존재라는 인식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상당수의 여자들 역시 그것을 사랑이라고 받아들이기도 한다. 주장은 양측의 입장을 모두 들어봐야 한다. 자신의 생각 방향과 달라도 접해보는 것이 생각의 균형을 맞출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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