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는 누군가 Nov 06. 2018

청마를 읽겠다.

거제 둔덕 청마생가

누구나 글은 쓸 수는 있지만 누구나 잘 쓸 수는 없고 누구나 시를 쓰지만 누구나 잘 쓸 수는 없다. 지역마다 그 지역을 대표하는 문학인은 한 명은 꼭 있다. 그리고 그 사람을 기리는 생가나 기념관이 세워져 있는 경우가 많다. 지금으로부터 18년 전에 거제를 고향으로 태어난 문학인이 있었다. 문학계에서는 거두로 불려진다는 청마 유치환 선생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거제시를 온 것도 여러 번이지만 문학인의 흔적을 따라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청마 유치환도 그랬을까. 계속 멋지고 좋은 것을 찾기 위해 써 내려갔을까. 통영에도 청마 유치환의 흔적은 있지만 통영하면 박경리가 먼저 생각나기 때문인지 거제가 먼저 생각난다. 그는 생에 대한 의지를 진지하게 생각했으며 시의 기교나 표현에 집착하지 않았다고 한다. 

팩트만 전달하는 기사가 아닌 다음에야 보통은 자신만의 공간에서 써야 잘 써진다. 그래서 시인이나 문학인은 자신만의 집필실에서 글을 썼는데 보통은 그 공간을 재현해놓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자신만의 스타일을 고수했다고 한다. 바흐는 정장을 입고 작업을 했으며 로시니는 술에 취해서 작업을 했다고 한다. 

글을 쓰는 것은 우물에서 마중물을 붓는 것처럼 아니면 시동을 걸기 위해 모터를 돌리는 것처럼 예열 작업이 필요하다. 청마 유치환은 1931년 <문예월간> 12월호에 <정적(靜寂)>을 발표해 문단에 나왔으며, 이후 35년 동안 14권에 이르는 시집과 수상록을 펴냈다. 그의 시중에서 '행복'의 첫 구절이 마음에 와 닿았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 보다 행복하나니라"

2000년에는 그가 살았던 그 모습에 최대한 가깝게 복원을 해두었다고 한다. 우물을 지금도 사용할 수 있는지 열어보지는 않았지만 이런 집에는 우물 하나쯤은 있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사실 글쓰기에는 특별한 비법은 없다. 다양한 책을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지우고 조금 더 좋은 글을 쓰기 위해 꾸준하게 정진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조그마한 집이지만 세간살이를 그 시절 그때로 돌아간 것처럼 모아두었다. 청마 유치환은 인간의 생명과 그 운명을 많이 고민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제 말기의 극한 상황에 자학적 분노의 밑에는 생명 의지가 있으며 인간의 숙명이며 피해 갈 수 없는 죽음을 잘 표현했던 '청마시초'에서는 그의 허무가 잘 표현되어 있다. 

조선 말기와 일제 강점기에는 거제도는 이런 모습이었던 모양이다. 당시 마을을 축소모형으로 잘 표현해두었다. 어디서든지 구할 수 있는 볏짚으로 만든 초가지붕과 마당 한편에 작물을 심으며 살아갔다. 거제도는 따뜻한 곳이라서 작물을 키우는 것이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생가 옆에는 청마 유치환 기념관이 자리하고 있다. 그의 문학세계를 엿볼 수 있는 곳이면서 생애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그는 왜곡되기 쉽고 일제에 편승하기 쉬운 그 시대에 도덕적인 시인으로 평가를 받고 있는데 스스로 윤리를 갖지 않은 글이나 윤리의 정신에서 생산되지 않는 문학은 그것을 읽어줄 독자는 없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평범한 사실의 나열은 글이 아니다. 특징적인 점을 포착해 집중적으로 묘사해야만 성공한 작품이다. 이목구비를 그릴 게 아니라 그 눈썹과 뺨의 세말힘을 살려 그 사람의 가장 특징적인 면모를 드러내라." - 이건창

오늘은 바람이 불고

나의 마음은 울고 있다.

일즉이 너와 거닐고 바라보던 그 하늘 아래 거리언마는

아무리 찾으려도 없는 얼굴이여.

바람 센 오늘은 더욱 너 그리워

긴 종일 헛되이 나의 마음은

공중의 기빨처럼 울고만 있나니

오오 너는 어디메 꽃같이 숨었느뇨.

- 청마, 그리움

이곳에는 동시대를 살았던 그의 지인들과 친필 편지 그리고 제자들의 이야기가 있다. 청마 유치환은 1908년 경남 거제시 둔덕면 방하리 507번지에서 음력 7월 14일 유생인 아버지 진주 유 씨 준수와 어머니 밀양 박 씨 우수 사이에서 차남으로 출생했다. 간혹 글을 쓰는 이유를 생각할 때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나를 놀라게 하기 위해서 쓴다는 생각이 든다. 남이 보지 못했던 그 틈새를 보고 그것을 글로 옮길 때 가장 재미있다. 

부러운 것은 청마 유치환이 부모를 잘 만났다는 것이기도 하다. 유생이었던 아버지 유준수는 내성적이지만 꿋꿋한 선비정신으로 옳게 이끌었으며 성격이 유달리 활달하면서 유머를 잊지 않았다는 어머니는 아들을 믿어주고 받쳐주었다고 한다. 청마의 글 '우연히 시인이 되었다'에 따르면 일본의 다카무라 고타로와 하기하라 사쿠타로 그 밖의 아나키스트 시인들의 작품을 즐겨 읽었다고 한다.

죽음 앞에서

그날 절벽 같은 

너의 죽음 앞에서

다시도 안 열릴

석문을 붙들고

아무리 불러

호곡한들

내 소리

네가 들으랴

네 소리

- 청마 유치환


인생에서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보물은 무엇인가. 열정이라는 말, 자연이라는 말, 사랑한다는 말, 발견이라는 말 등 좋은 것도 참 많다. 니체는 사람의 정신을 세 단계로 나누었다. 사자는 기존의 관념과 체계를 깨고 나아가는 질풍노도의 시기와 자유를 향한 투쟁의 시기를 상징하고, 낙타는 주어진 현실에 순응하며 묵묵히 짊어지는 시기를 말하며, 어린아이는 죄 없이 순준무구한 긍정의 시기와 새로운 삶을 빚는 가능성의 시기에 비유하고 있다. 

오래전의 청마 유치환의 모습이다. 전통적인 것과 진부한 것은 다르고 낡은 것과 오래된 것은 다르다. 천 개의 칼을 본 후에야 명검을 알게 되고 천 개의 글을 쓴 후에야 좋은 글을 알게 된다고 한다. 청마의 시를 읽듯이 어제도 오늘도 책을 읽다 보면 너무나 많은 것을 과식했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래서 생긴 배탈을 글로 써 내려가며 누군가와 소통하고 결국에는 자신을 구원하는 것이다. 유치환이 급서 한 날은 1967년 2월 14일로 야간근무를 마치고 귀가하다 급행버스에 치여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등성이에 올라 보노라면

내 사는 거리는 아슴한 저편 내 끝에서부터

내 발밑까지 첩첩이 밀려 닥쳐 있고

이쪽으로 한 골짜기 화장장이 있는 그 굴뚝에서

오늘도 차사의 연기 고요히 흐르고 있거니…… 

마침내 돌아와 전 같이 잔잔히 잔잔히

한 줌 불귀의 흔적 없는 자취로

거두어짐은

아아 얼마나 복된 맑힘이랴   

- 청마의 유고시

매거진의 이전글 삶의 의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