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부활의 꿈 사비성
교수 : 백제에 대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하려고 하는데 마침 6일 부소산성, 정림사지, 능산리 고분군등이 세계유산으로 등재가 되었다네.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의미 있는 일이지. 그건 그렇고 진수는 미래도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진수 : 조금 씁쓸하게 일본의 군함도와 같이 등재가 되어서 그렇지만 축하할 일이죠. 미래도시요? 전 건축을 배웠지만 도시계획은 배우지 않았어요. 그래도 제 생각을 물어본다면 20세기에는 빠르게 커져가는 경제도시였지만 21세기는 도시문화와 IOT, ICT같은 기술이 접목된 미래 도시로 진화하지 않을까요?
교수 : 그럼 약 1,400년 전에 부여에 계획도시가 세워졌다면 믿겠어?
진수 : 다큐프로같은 것에서 얼핏 본 것 같습니다. 혹시 사비성 이야기 하시는 거 아니에요?
교수 : 맞아 사비성이야. 몇 일전에 말했던 부소산성은 잘 알겠지.
진수 : 예 주로 낙화암, 고란사를 이야기 하셨었죠.
교수 : 부소산성(扶蘇山城)은 백제시대 사비성의 남아 있는 흔적이야. 사비왕궁이 있는 평지에 사비도성이 있고 후방에 부소산성과 남쪽에는 성흥산성이 방어하는 구조였거든. 그렇게 신수도가 만들어진 것이 서기 538년이야.
진수 : 강성한 백제의 부활을 꿈꾸는 수도였겠네요. 공주 사람들에게는 기득권을 잃어버리는 일이 되겠지만요.
교수 : 사비도성은 북조의 낙양성을 벤치마킹해 만든 도시로 금강의 지류인 백마강을 자연 해자 삼고 부소산의 지세를 그대로 이용해 성벽을 쌓는 나성 건축의 형태를 띄고 있는 앞선 고대도시야. 해자는 도성을 방어하는데 있어서 없어서는 안될 만큼 방어완충지 역할을 해주지. 자연이 아닌 인공적으로 해자를 만든 대표적인 사례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거주했던 오사카성을 들 수 있어.
교수 : 사비왕궁의 중심에는 국가 사찰 정림사가 있고 지금은 터만 있지만 정림사지 5층 석탑만은 당시의 기술을 살짝 엿보게 해주거든. 석탑이 북쪽을 바라보는 방향을 측정해보면 357도 32분으로 거의 정북에 가깝지. 정림사는 사비왕궁에서 궁남지로 연결되는 주작대로의 우측에 배치하기 위해 서남쪽의 낮은 곳을 메우고 동북쪽을 깎아내어 평지를 조성한 후 남북자오선상에 연지, 남문, 중문, 금당, 강당을 배치했던 계획도시야.
진수 : 모든 것이 완벽하게 계획된 계획도시였군요. 그런데 지금은 왜 흔적이 거의 없는거죠? 그런 중요한 유산이라면 잘 보존되어야 할텐데요.
교수 : 아쉽게도 먼 과거에는 전쟁에서 패한 국가의 흔적은 파괴되고 지워졌어. 당나라와 신라에 의해 패망한 국가 백제는 잊혀져 간거지. 지금도 정림사지 5층 석탑을 살펴보면 소정방이 ‘대당평백제 국비명(大唐平百濟國碑銘)’을 새겨 넣어 당시 상황을 알려주고 있는데 외세가 들어와 ‘당나라가 백제를 정복했다’라고 기술의 정수인 석탑에 낙서를 한 셈이야.
진수 : 어이가 없군요. 일본이 한국에 온갖 흔적을 남긴 것과 다를 것이 없겠네요.
교수 : 무려 1만여호가 들어섰던 100% 계획도시 사비성은 지금의 세종시와 비교해도 설계의 수준이나 철학적인 측면을 보아도 뒤떨어진다고 볼 수는 없어. 여기에 왕후제를 실시했던 백제는 지방에 왕을 파견하는 22개의 담로제를 실시하고 체계적인 호적제도를 운영했는데 그 중심에는 사비왕궁이 자리하고 있었던 거야. 고대 국가 중에 도시 외곽에 긴 성을 두른 것은 고구려의 장안성도 있었지만 사비성이 55년 앞섰으니 최초의 계획 도시 국가라고 볼 수 있어.
진수 : 호적제면 지금의 주민등록제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네요.
교수 : 유사하다고 볼 수 있지. 옛 사비성은 지금 백제문화단지에 재현은 되어 있는데 예전모습이라기 보다 사비왕궁만 겨우 표현한 것 같아.
진수 : 사진으로 봤을때는 그럴 듯 해보이는데 무언가 사람냄새는 안나네요.
교수 : 나도 가보긴 했는데 조금 더 사람냄새 나도록 만들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아. 사비성의 축조기술로 돌아가보면 부소산의 지세를 이용해 만든 석축은 성 안쪽은 돌로 쌓고 뒤쪽은 흙으로 쌓아 올렸으며 외곽에 돌을 한 겹 더 쌓아 올려 내부를 보호하는 형태야. 흙을 시루떡처럼 다져쌓는 판축공법(版築工法)과 잔 나뭇가지와 잎사귀 등을 깔고 흙을 쌓는 부엽공법(敷葉工法)은 당시 앞서간 토목공법으로 진동에 대응력이 좋아 지진에도 강했어. 부소산성 이전에 풍납토성에도 이 기술이 이미 사용된바가 있는데 이는 일본에 전해져서 오노조(大野城), 미즈키(水城)를 만들때도 사용되었어
진수 : 내진 기술이 이미 그때에도 있었네요. 일본은 정말 백제를 존경해야 할 이유가 한 두가지가 아니겠네. 우리가 배워야 할 건축, 토목기술이 이미 과거에 있었는데 너무 역사를 도외시한거 아니에요?
교수 : 일본에 전해진 것은 그것뿐이 아니야. 정림사지 5층 석탑을 만들기 위해 돌을 다루는 기술과 사찰을 만드는 기술적인 기반의 상당부분은 백제에서 건너간 것이야.
진수 : 조금 화날라 그래요. 그런데 지금 그런 행태를 보면
교수 : 진정해. 지나간 것을 어찌하겠어. 지금부터 잘 연구하면 되지. 하하 나도 때로는 아쉽기는 해. 로마라던가 그리스의 고대도시로 여행을 못가서 안달인 한국 사람들은 사비성은 그냥 옛날 흔적이려니 하니까 말이야.
교수 : 백제 사비성의 기록은 중국 역사서에도 남아 있어. '남제서'에는 매라에 대한 기록으로 동성왕이 매라 지역의 왕을 임명했다는 기록을 살펴보면 각 지역의 왕과 제후의 임기는 5년이라고 알리고 있어. 마치 지금 지자체장을 선출하는 것 같지 않아?
진수 : 한번 임명되면 그냥 쭉 하는거 아니었나요? 임기가 정해져있으니 잘하려고 노력은 하겠네요.
교수 : 그러니까 앞선 제도를 도입한 거라고 볼 수 있는 거야. 기득권이었던 보수 귀족들의 반대를 이겨내고 습지였던 그곳에 연못을 만들어 도시의 기반을 구축하는 한편 시가지를 조성하면서 5부 25항이라는 행정체계를 구축하고, 22부사를 만든 성왕의 추진력과 기획력은 조선의 수도를 만들었던 정도전의 업적보다 나으면 나았지 못하지는 않다고 봐.
진수 : 갑자기 눈앞에 사비성이라는 미래도시가 눈앞에 그려지는 느낌이에요.
교수 : 혹시 부여에 가서 구드레 돌솥밥을 먹어본 적은 있나?
진수 : 예 어릴때 부모님과 그곳을 갔을 때 먹어봤어요. 나름 먹을만 하더라구요. 근데 왜요?
교수 : 구드레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이 오래된 지역명이기도 하지만 사비시대에는 그곳은 나루터 수준이 아닌 항구의 역할을 했던 곳이야. 사비성을 드나드는 외국 사절들이 구드레항을 통해 입국하고 출국을 한 셈이지. 참고로 구드레는 따뜻한 바위라는 구들이 있는 동네라는 이름의 뜻으로 따뜻한 느낌마저 들어. 언제 그곳에 갈일 있으면 돌솥밥만 먹지 말고 항구였을때 어땠을 지 상상도 한번 해봐
진수 : 아~ 꼭 그렇게 해보겠습니다.
교수 : 사라졌던 미래도시를 조금이라도 맛본 느낌이 어때?
진수 : 사비성에 대해 조금 더 알고 싶은 생각이 들고 성왕이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었을까? 세종, 정조, 세조, 고종같은 조선시대 임금은 적지 않은 드라마에서 재조명되었는데 성왕이 등장한 기억은 별로 없네요.
교수 : 성왕에 대한 기록은 일본의 역사서 <일본서기>에서도 등장하는데 “성왕은 천도와 지리에 신묘하게 통달했다“라고 쓰여져 있어.
진수 : 거의 극찬 수준이네요.
교수 : 일본인들이 괜히 백제의 옛 흔적을 찾아오는 것이 아니야. 그들에게는 성지 순례와 비슷한 의미를 담고 있는거지.
진수 : 저도 가끔 일본인들이 무녕왕릉이나 고분군을 왔다갔다는 기사같은 것을 보긴 했어요.
교수 :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나? 여기까지 하고 사비성에 대해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면 언제든지 물어보러와.
진수 : 예 감사합니다. 오늘도 하나 얻어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