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갈 수 없는 죽음

한국천주교회의 못자리 여사울 성지

진수 : 교수님 안녕하세요. 1주일 만에 뵙네요.

교수 : 그러게 무슨일 있었어?

진수 :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장례식장에 있다가 발인하고 주말에 쉬고 나오는 길이에요.

교수 : 그런 일이 있었구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어땠어?

진수 : 어릴 때는 자주 보았는데 크면서 많이 못 봐서 그런지 공허한 느낌은 있었지만 먹먹하고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았어요.

교수 : 진수가 겪은 것도 있고 오늘 이야기의 주제도 그렇고 죽음이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이야기 해볼까 해서.

진수 : 저는 괜찮아요.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죽음이 무엇인가가 궁금할 때가 있었어요.


MG0A2521_resize.JPG 여사울성지 (충남 예산군 신암면 신종여사울길 61-2)

교수 : 예산에 있는 여사울성지는 천주교의 시발점이라고 볼 수 있어. 당시 최대 교우촌이 신리성지였다면 이존창 루도비코 사도의 고향인 여사울 성지는 천주교의 태동을 알린 곳이야. 한국인으로 최초의 사제가 되었다는 김대건 신부와 최양업 신부가 이존창 사도에게 교리를 받기도 했지. 어떤 성지를 가더라도 십자가의 길이 있는데 예수가 사형선고를 받고 갈바리아 산에 이르기까지 일어났던 14가지 중요한 사건을 성화나 조각으로 표현한 거야. 인간이 가장 두려워한다는 죽음에 맞서는 그런 예수의 모습으로 순교자의 삶을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할라나.

진수 : 제가 순교자도 아니고 아직 나이도 어려서 그런지 죽음이라는 것은 그렇게 와닿지는 않아요. 대부분 나이가 들면 혹은 예기치 못한 사고로 인해 죽는다고 생각하잖아요. 일부 자살하는 사람들도 있긴 하지만요.

교수 : 순교자의 죽음까지 언급하지 않아도 죽음이라는 것은 자신이 표현할 수 있는 것을 최대치로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해. 삶과 죽음은 끝과 끝에 있는 그런 거리감 있는 것이 아니라 이순간에도 곁에 있는 동반자 같은 존재야. 한국에에서도 뮤지컬로 인기 있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엘리자벳의 삶을 다룬 '엘리자벳'에서 그녀는 죽음과 키스 이후 비로소 그녀가 원하는 자유를 얻게 되지. 죽음은 비로서 인간을 완성시켜준다는 말도 있으니까.

진수 : 그럼 어떻게 살더라도 죽으면 인간이 완성된다는 이야기를 하시는 건가요? 그럼 천주교 박해때 순교자들은 자신이 완성되기 위해 순교를 택했다는 말인가요?



MG0A2524_resize.JPG 여사울성지 십자가의 길

교수 : 사람들은 대부분 죽음을 두려워하고 그것을 언급하는 것조차 싫어해. 이순간 죽음이 같이 동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려고 하는 거야. 모 코미디 프로에서 "OO해서 죽겠어"라는 말을 하면 나오는 저승사자처럼 멀리 떨어져 있는 그런 것이 아니라는 거지. 죽음이 동행한다고 생각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 오히려 삶이 즐겁고 순간순간에 충실할 수 있는 거야. 순교자들도 천주교 신앙을 믿고 그 순간에 충실했기에 죽음이라는 것이 두려움의 대상으로만 생각되었던 것이 아니었을 거야.

진수 : 그건 맞는 것 같기도 해요. 레포트 날짜에 여유를 주면 줄수록 그것에 대한 중요성은 줄어들거든요. 처음에는 철저히 잘 준비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잊어버리고 있다가 닥치면 기존의 방식대로 작성해서 제출하고 그 결과물은 이전과 비슷하죠. 인생도 그럴 것 같아요. 죽음이 한 50년쯤 후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살아간다면 49년은 적당히 살아도 된다는 생각도 들것 같아요.

교수 : 죽음은 최고의 오락거리이기도 했어. 글레디에이터로 잘 알려진 검투사의 삶도 죽음을 오락거리로 만든 거고 투우 역시 그런 맥락과 유사하지. 예수의 탄생을 기준으로 기원전과 기원후로 나뉘게 되는데 그 당시 로마제국은 묘한 관습이 하나 있었어. 바로 죽은 황제를 신으로 받드는 관습으로 원로원에서 적당하지 않다는 판정만 내리지 않았다면 행사를 진행했거든. 기원전 1세기에 시작된 이 관습은 2세기에 이르러 더욱더 화려해졌는데 베스파시아누스 황제는 임종할 때 이런 말을 했다고도 전해지고 있어. "아아, 유감천만한 일이로다. 짐도 결국 신이 되는 건가......"

진수 : 사람이 죽어서 신이 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사람으로서의 한계가 죽어서 신으로서 자유로워 진다는 의미인건지 생각할 수록 복잡해지기만 하네요.



MG0A2526_resize.JPG 여사울성당

교수 : 죽음은 가까이 있지만 그것을 대면하지 않고서는 절대 알 수가 없지. 그리스도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세가지 설이 전하고 있는데 누가복음에서는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기옵니다", 요한복음에서는 "이제 다 이루어졌다", 마가복음에서는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라고 했다고 기록되어 있어.

진수 : 죽음에 이르렀던 유명인들의 어록과 그 삶을 이야기하는 것도 의미있겠네요.


"아니, 기다리고 있을 뿐이야. 저곳은 참 멋진 것 같군." (발명가 에디슨이 고통스럽냐는 아내의 질

문에 죽음을 목도한 듯이 한 말)

"이제 신에 대해 생각해야 할 때가 됐군." (1822년에 사망한 독일의 낭만파 작곡자이자 작가였던

호프만이 했던 말)

"나는 여기 연설하러 온 게 아니라 죽으러 온 거다." (1896년 교수형을 당한 미국의 무법자 체로키

빌이 했던 말)


MG0A2527_resize.JPG 백제어로 붉다는 의미 '삽'이 붙은 삽교천 순례길

교수 : 박해시절 여사울 성지나 신리성지에서 잡혀서 삽교천을 지나 압송로였던 한티고개를 넘어 순교자들의 마지막을 맞이했던 해미순교성지까지 가는 길에 그들은 죽음을 준비하고 길지 않은 인생 여정에서 자신을 돌아보았겠지.

진수 : 죽음이란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하는 날이었습니다. 나이 60쯤 되면 생각하는 그런 것이 아닌 그런 거군요. 덕분에 잘 갈마무리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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