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 섬진강 포구의 데크길
전에 왔을 때는 보지 못했던 길이 보이는 순간이 있다. 그런 순간에 시칠리아 섬의 시라쿠사에서 태어난 아르키메데스가 부력의 원리를 깨닫고 목욕탕을 나와 소리친 '유레카'정도는 아니더라도 자그마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느끼게 된다. 아르키메데스는 원과 구에 대한 탐구를 좋아했다고 한다.
우연하게 찾은 하동포구에서 조금 더 나아가니 이런 멋진 데크길이 쭉 뻗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두꺼비가 많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섬진강의 데크길은 너무나 아름답게 쭉 뻗어 있다. 반지름의 길이가 r인 구의 겉넓이가 반지름의 길이가 r인 원의 넓이의 4배임을 증명하여 구의 겉넓이가 4πr2이라는 것을 알아낸 아르키메데스의 업적만큼은 안 되겠지만 소확행에서 이 정도로 충분하지 않은가.
데크길로 내려서 걸어가 본다. 갈대가 이리저리 나부끼면서 바람에 따라 움직이는 갈대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갈대가 별 것이 있겠냐만은 여러해살이 풀은 갈대는 보통 강가나 바다에 군집을 이루고 산다. 갈대라는 이름은 대나무와 비슷하게 생긴 데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갈대와 관련된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갈대는 흔히 밀고자를 은유적으로 표현할 때 사용한다고 한다. 당나귀 귀를 가진 임금에 대한 비밀을 알고 있었던 전속 이발사가 갈대숲 속에서 남몰래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말을 한 것이, 갈대가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퍼져나가서 결국은 모두가 알게 되었다고 한다.
데크길을 천천히 한 번 걸으면서 돌아본다. 한방에서는 갈대의 뿌리를 노근(蘆根), 줄기는 노경(蘆莖), 꽃을 노화(蘆花)라 하고 약재로 사용하고 있는데 밀고자를 은유적으로 표현하기는 하지만 갈대의 꽃말은 ‘신의’, ‘믿음’이기도 하다.
예부터 갈대를 이용한 생활도구를 많이 만들어서 활용했는데, 이삭(꽃)을 잘라서 빗자루를 만들고, 줄기는 엮어서 햇빛을 가릴 때 사용하는 갈대발로 만들며 각종 생활도구들을 만들었는데 임꺽정이 난을 일으키는 것이 바로 갈대밭 때문이기도 했다. 갈대밭에서 갈대를 꺾어다가 살던 임꺽정 앞에 양반들이 자신의 땅이라고 하며 그곳을 빼앗았는데 이에 임꺽정이 들고 일어선 것이 바로 도적 임꺽정의 탄생이었다.
섬진강이 유유히 흘러서 저 아래로 내려가고 있다. 갈대는 바람에 휘휘 한쪽으로 몰려가지만 쓰러지지는 않는다. 갈대를 보면 사람들이 저렇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어느 한 방향으로 몰면 그곳으로 몰려가서 혼자서 서 있는 사람이 드물듯이 갈대 역시 그렇다.
보통 백정을 소나 돼지를 잡는 사람들을 생각하는데 원래 백정은 아래에서 일을 하는 백성들을 모두 포함한다. 과한 부역 등에 못 이겨서 결국 집시 같은 삶을 선택한 사람들이 조선시대에는 적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 길 위에서 일상이 되어버린 여행은 내 삶이 있기에 여행은 그토록 소중해진다. 완벽한 자유는 없겠지만 그저 짧은 시간의 조금씩 시간을 잃어버리며 떠나는 여행에서 조금씩 색달라지는 자유를 만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