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 그곳에서도 삶은 이어진다.
어떤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그것을 가장 쉽게 풀 수 있는 방법은 원점으로 돌아가 보는 것이다. 원점으로 돌아가 보면 그 본질이 무엇인지 보일 때가 있다. 여행 역시 가고 싶은 곳을 생각하려면 그곳에 갔을 때 가장 먼저 가보는 것이 좋다. 필자에게 하동은 하동포구라는 곳이었다. 하동을 잘지 못하고 갔을 때는 화개장터라는 곳이었지만 하동이 왜 하동인가 생각하고 갈 때는 하동포구가 그 시작이었다.
하동포구만 가지고 글을 쓰는 것은 한계가 있지만 하동포구를 배경으로 살아갔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무궁무진할 것이다. 하동포구 아가씨처럼 누군가가 흠모했던 사람도 있고 그 역사 속에 사람의 이야기가 있었다. 어디에 소속되지 않고 움직이며 자신의 업을 유지하는 사람을 프리랜서라고 부른다. 자유로운(Free) 용병은 전쟁이 나면 긴 창(Lancer)을 들고 영주 대신 싸우고 몫을 받았다. 지금의 프리랜서는 쓸 만한 창을 소유하고 피 흘리면서 싸우는 용사에서 출발하였다.
배를 움직이며 하동포구를 오가는 사람들도 자신만의 기술로 짐과 사람을 저 건너편으로 혹은 화개장터까지 옮기기도 했다. 사람에 따라 그 능력이 달랐던 것이다.
서해안의 바다를 가보면 소나무가 심어져 있어서 바다의 해풍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하동포구에서 이어지는 섬진강 트레킹길에는 소나무를 흔하게 볼 수 있다. 소나무는 한 번 심으면 주변에 다른 나무가 자라는 것을 허용하지 않기에 송림이 있는 곳에는 다른 나무를 보기가 쉽지 않다.
꾸준하게 갈 수 있는 사람은 자기만의 리듬을 잃지 않고 적당한 긴장감을 유지하는 사람이다. 글을 쓰는 사람 역시 그런 적당한 긴장감을 유지하는 사람만이 생업이 유지된다. 글감을 찾는 것은 이렇게 섬진강변을 걷다가 우연하게 독특한 조형물이나 풍경을 발견하는 일에 가까운 듯하다.
하동에 내려오면 두 번에 한 번쯤은 재첩을 넣은 음식을 먹고 싶어 진다. 섬진강변에는 재첩이 많이 사라지기는 했지만 지금은 종패를 뿌려서 기르기 때문에 섬진강변에서 잡히는 재첩으로 만든 음식을 먹어볼 수 있다.
배가 항행하는 강·내 중에 바닷물이 드나드는 어귀의 하동포구는 경남 하동. 그 포구 80리는 예로부터 빼어난 경관으로 많은 시인 묵객들이 즐겨 소재로 다뤘다. 섬진강도 마르지 않은 강이듯이 삶 역시 마르지 않은 바다다. 마르지 않은 그곳을 찬찬히 들여다봄으로써 소소한 것에서 소중한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하동지역은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할 때 걸었던 백의종군로가 있다. 긴긴 거리를 걸어가면서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노량진의 동남쪽은 바닷물이 굽이치며, 호남과 영남이 통하는 길이다. 그러므로 바닷가 각 고을에서 거둔 세금을 실은 배가 여기에 모두 모였다가 서울에 도달한다. 예전에 이순신(李舜臣) 장군이 왜적을 맞아 싸워 승리를 거둔 중요한 나루” - 『여지도서』 제39권 곤양현
‘쌍돛대 님을 싣고 포구로 돌고/ 섬진강 맑은 물에 물새가 운다/ 쌍계사 쇠북 소리 은은히 울 때/ 노을 진 물길 위엔 꽃잎이 진다/ 80리 포구야, 하동포구야/ 내 님 데려다주오’ 하동포구 아가씨
하동포구 공원을 지나 말을 놓아길렀다는 목도를 오른편에 두고 강을 왼쪽으로 돌아 거슬러 오르면, 1968년에 개통된 경전선의 섬진강 철교가 모습을 드러낸다. 포구에서 배를 노를 지으면서 앞으로 나아갈 때 직선으로 나아가지는 않는다. 구불구불한 곡선을 그리면서 배가 움직인다. 계속 고쳐가면서 살다 보면 하동포구의 속살을 필자만의 눈으로 볼 수 있는 날이 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