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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Oct 04. 2015

괜찮아 3반

장애인이 살기 좋은 세상은 모든 이에게 좋다. 

한국의 교육은 어떠한가? 

뒤쳐지는 학생은 잊어버리라고 하는 교육이 한국의 현실이다. 

어차피 노력해도 안 되는 학생은 그냥 놔두는 것이 가장 좋다. 그럴까? 1등 의미 있다. 그리고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일반 사람들보다 많을 수 있다. 그러나 한 명이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다. 정상적이면서 그중에서 우월한 사람들을 위해 좋은 세상은 만들 수 있을지 몰라도 대다수의 사람들이 행복한 세상은 만들기는 어렵다. 


승자독식주의의 사회에서 뒤쳐지는 사람들을 배려하는 것은 어쩌면 쓸모없는 일이고 바보같이 보이는 일이기도 하다. 모든 생명은 그 자체로 태어난 의미가 있다. 모든 사람이 성공을 하고 돈을 벌고 기득권이 되어야 되는 것은 아니다. 삶은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다.


영화 괜찮아 3반은 팔다리가 없는 선생이 학급을 맡으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리고 있다. 누가 이런 선생을 바라겠는가. 혼자서는 칠판에 글씨도 쓰지 못하고 글을 쓰는 것도 힘들어한다. 이런 사람이 학생을 가르친다면 아마 한국의 어머니들은 벌써 난리가 났을 것이다. 그 사람의 인성 따위는 상관없이 성적을 올려줄 사람이 필요하지 쓸데없이(?)  인생을 잘 살아가는 방법 따위를 알려주는 선생은 필요하지 않다. 


일본은 장애인을 위한 시스템이 아주 잘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일본에 거주하는 장애인들은 행동에 제약을 받는다. 한국은 어떤가? 내가 장애인이라고 생각하고 행동해본 적이 있는데 정말 불편하다. 아니 선천적으로 장애인이 되었더라면 특정 감각이 발달했으련만 후천적으로 장애인이 된 사람들에게는 지옥과  다름없는 나라가 한국이다. 장애인이 되는 순간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하는 나라가 잘 사는 나라일까? 


장애인이 살기 좋은 나라는 일반 사람들은 더 살기 좋은 나라이다. 장애인을 그렇게 배려할 수 있는 나라가 일반 국민을 위한 그런 배려를 안 했을까? 아무런 의미(?) 없는 그런 사람들을 위해 배려할 수 있을 정도로 정치적인 배려가 있고 국민이 동의했을 정도라면 상당히 성숙된 사회이다. 


뒤쳐진 한 명을 버리고 가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같이 갈 수 있는 사회를 꿈꾸었으면 좋겠다. 장애는 쓸모없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다름을 인정하고 그들을 위해 배려하는 그런 사회가 건전한 사회이다. 영화 속에서 아이들은 신노스케 아카오라는 선생을 만나면서 점점 더 변해가는 것을 느끼게 된다. 장애를 가졌기에 아이들이 무엇이 부족한지 어떤 것에 상처를 입었는지 더 잘 알게 된다는 것을 보며 좋은 환경에서 자라나고 레드카펫을 걸었을 수많은 기득권이 과연 부족한 삶을 이해하기 힘들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성을 가진 인간이 동물과 다른 것은 부족한 다른 존재를 수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모든 동물들은 약하고 뒤쳐진 존재는 버린다. 어느 정도 챙겨주기는 하지만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면 무리를 위해 희생을 감수한다. 인간은 표유류에 들어가기는 하지만 유일하게 지성을 가지고 문명을 만든 존재이다. 문명을 만들어놓고 동물처럼 적자생존의 법칙을 인정하며 살아가고 있다. 


교육은 순위로만 평가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인간은 그보다 더 좋은 세상을 만들 능력이 있다. 


영화의 주인공은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오체불만족의 저자 오토타케 히로타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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