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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Nov 29. 2018

이런 산행

청양의 도림사지

사찰이 있다가 없어진 곳을 사지라고 하는데 충청남도에서 가본 사지 중에서 가장 안쪽에 있으면서 등산 느낌을 받게 한 것은 도림사지였다. 칠갑산은 몇 번 올라가 본 적은 있었지만 이 방향으로는 처음 올라가 본다. 쉽게 생각하고 올라갔다가 땀을 생각 외로 많이 흘렸다. 등산화를 신고 올라간 것이 아니라서 떨어져 내린 낙엽에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스럽게 올라가 보았다. 도림사지가 있는 곳은 청양의 대웅전이 두 개가 있는 사찰 장곡사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조금 더 지나가야 나온다. 여름에는 시원한 물이 흘러내려오는 도림계곡이 있어서 피서지로 알려진 곳이기도 하다. 

도림사는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사찰로 남향한 계곡에 3단의 축대를 쌓아서 절터를 마련하고 사찰을 지었다. 지금은 사찰이 있었던 흔적만 남아 사지라고 불리며 현상이 심하게 변하여 가람배치를 파악할 수 없으나 3단에 걸쳐 건물을 배치한 가람으로 청양을 대표하는 장곡사에서도 비슷한 지형을 확인할 수 있다. 고려시대에 창건되고 동국여지승람에 기록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조선 초기까지 있었다고 한다. 

청양군 장평면 적곡리 667에 있는 청양 도림사지는 기념물 제100호로 지정이 되어 있는데 그곳을 보기 위해 산행을 시작해본다. 산행은 우측의 샛길로 먼저 올라가면 된다. 

나무에는 낙엽이 대부분 떨어져서 산행길을 가득 채우고 있다. 돌이 많은 곳이라서 이곳을 올라가기 위해서는 등산화와 등산스틱을 가지고 올라가는 것이 좋다. 그냥 내딛으며 걷다 보면 미끄러질 수도 있고 돌에 발목을 다칠 수도 있다. 

아주 한참을 올라온 것 같은데 100미터쯤 올라온 듯하다. 아직도 갈길이 멀다. 이곳에서 정상으로 올라가면 칠갑광장에서 올라온 그 길과 만나게 된다. 

산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산나물로 보이는 것들도 꽤 눈에 뜨인다. 이곳으로 산행을 하다 보면 계곡은 깊고 사면은 급하며 지형윤회단계에서 장년기(壯年期) 초기에 해당하는 지형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다. 칠갑산에서 볼 수 있는 특산물로는 구기자·송이버섯·싸리버섯·고사리 등이 있다.

열심히 걸어서 올라오니까 어느 정도 도림사지가 부근에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지천과 잉화달천이 계곡을 싸고돌아 7곳의 명당자리가 있다고 해서 칠갑산 이리도 한데 산세가 거칠고 험준하며 사람들의 발길이 쉽게 닿지 않아 옛날에는 지역의 통합을 가로막아 생활권의 분리를 조장하는 요인이 많았으나 최근에는 그나마 접근성이 좋다. 

무언가 느낌이 온다. 저 돌계단을 올라가면 도림사지가 나올 것 같은 분위기다. 드디어 도림사지를 만나게 되는 것인가. 아름다운 경승을 이루어 지천구곡(芝川九曲)도 좋고  ‘충남의 알프스’라는 별명도 충분히 알겠다. 이제 빨리 도림사지를 만나고 싶어 졌다. 

거친 산세를 지나면서 대체 사찰이 들어설 자리가 어디일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곳에 오니 건물이 있을만한 공간이 만들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맨 아랫단에는 길이 약 60미터의 축대가 쌓아서 대지를 조성하였고 중간단은 약 30미터 되는 대지에 다듬은 초석과 문방석, 안상이 새겨진 지대석, 석탑의 상륜부 파편 등이 남아 있다. 

제대로 형태를 가지고 남아 있는 유형문화재는 바로 이 도림사지 삼층석탑이다. 고려시대의 형태를 가지고 있는 일반형 석탑으로 3층의 기단 위에 3층 탑신과 상륜부로 구성되어 있다. 이곳에서 1973년에 발견된 방형의 사리함은 지금 국립 부여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상층기단의 면석에는 탱주와 양우주가 있는데 전체적으로 균형이 잡혀 있는 아담한 형태의 3층 석탑이다. 만물 생성의 7대 근원 七자와 싹이 난다는 뜻의 甲자로 생명의 시원(始源) 七甲山의 기운을 그대로 이어가는 사찰이었을 도림사의 흔적은 이렇게 남아 있다. 

이제 내려가는 일만 남았다. 땀이 머리와 등으로 흘러내려가기 시작한다.  남서쪽의 정혜사, 서쪽의 장곡사가 모두 연대된 백제의 얼이 담긴 천 년사적지로 남아 있지만 아쉽게도 도림사는 역사에서 지워지고 이렇게 흔적만 남아 있다. 언제 도림사지를 올라올지 모르겠지만 당분간은 이쪽으로 올라오지는 않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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