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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Dec 03. 2018

쌍청당

청풍과 명월의 맑은 기상이 담긴 고택

대전에서 고택은 모두 대덕구에 모여 있다. 조선시대에도 성리학으로 유명한 은진 송 씨 가문이 대덕구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중에 그 후손이 살고 있는 집 중 하나인 쌍청당은 별당이지만 아름답고 전망이 좋아서 그 분위기가 너무 좋다. 고택이지만 려 말-조선 초기에 부사정을 지낸 쌍청당 송 유(宋愉, 1389-1446)가 회덕으로 낙향한 후 세종 14년(1432)에 건립하여 거처하던 별당이기도 하다. 

청풍과 명월의 맑은 기상을 가슴에 품기란 쉽지가 않다. 건물 이름은 선생의 호인 ‘쌍청(雙淸)’을 따다 붙인 것으로  중종 19년(1524)에 1차 중수를 거친 이래 총 7차례에 걸쳐 부분적인 중수를 했다고 한다. 

쌍청당의 고택 규모는 작지 않은 편이다. 재력이 있던 양반들이 살던 고택이라고 해도 괜찮을 만큼 규모를 갖춘 곳이기도 하다. 은진 송 씨는 동춘당으로 더 많이 알려졌지만 고려 때부터인데 입향조(入鄕祖)는 송명의로 그의 손자로 쌍청당(雙淸堂)을 지은 쌍청당 송유(宋愉·1389∼1446)에 의해 가문이 번성해서 은진 송 씨들은 송유를 중시조로 모시고 있다. 

대전에서 은진송씨가 모여 살던 곳은 저 건너편의 송촌동과 중리동으로 보면 된다. 옛날에 이 부근을 부르는 지명은 쌍청당이 있는 마을을 윗중리, 백달촌 또는 하송촌이라 불렀는데 마을 동쪽은 상송촌으로 동춘당과 고택이 자리하고 있다. 

낙향해서 지은 집이지만 이 부근에서 터를 잡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표본이 되는 집으로 자리를 잡아왔다. 한 사람을 중심으로 번성한다는 것은 그만큼의 그 가문이 유력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전에 있는 지명중에 어떤 특정 성씨가 지명이 된 곳이 있던가. 송 씨가 사는 마을이라고 하여 ‘송촌’이라는 洞名이 생겨났을 정도라고 생각하면 그 성씨의 위세를 알 수 있을 정도다. 

쌍청당 안으로는 가을 낙엽이 흩뿌려져 있다. 형형색색의 단풍들이 집안을 채색하고 있는 느낌이다. 아래로 주황색의 낙엽들이 위쪽으로는 빨간색의 낙엽들이 마당을 채우고 있다. 

이쯤 되니 쌍청이라는 호를 사용했던 송유라는 사람이 궁금해졌다. 그는 타고난 자질이 고매하고 밝았으며 재주와 명성이 있다고 하는데 영화로운 벼슬을 구하지 않았으며 회덕 고향에 돌아와 조용히 살면서 즐거워했다고 한다. 보통 회덕을 저 멀리 건너편에 있는 회덕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회덕은 이곳까지 모두 포함하여 옛날에 송촌은 회덕의 백달촌(白達村)이라고 불리던 곳이었다. 

지금은 아파트에 살고 있지만 언젠가는 마당이 있는 좋은 집에 살면서 여러 가지 나무를 심어서 세월이 흘러가는 것을 자연을 통해서 접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쌍청당처럼 사당의 동남쪽에 별도로 집을 세워 특별히 정갈하고 깨끗하게 하고 제도의 화려함이 옥돌과 같음을 추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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