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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Dec 10. 2018

드디어 찾다.

음성 후미리  석탑

후미리 석탑은 대체 어디 있는 것일까. 두 번째로 이곳을 찾아와서 드디어 만날 수 있었다. 음성의 소이면 후미리라는 곳에 자리한 석탑은 에너지가 넘치는 여름에는 찾기가 쉽지 않은 곳이다. 수풀이 무성할 때는 낮은 석탑을 발견하는 것은 쉽지 않다. 소이면은 음성의 중심에서 동쪽에 있는 면으로 음성천 유역에는 비교적 넓은 평야가 발달해 있는 곳이다. 

소이면 후미리도 쌀이 많이 나오는 곳이다. 음성 쌀이 맛있다고 하는데 한 번 음성 쌀을 사서 밥을 해 먹어야겠다. 음성 소이면에서 가장 알려진 유형문화재는 미타사 마애여래입상이다. 마애여래입상은 비산리에 자리하고 있다. 

저번에는 여러 경로를 통해 접근을 하다가 포기를 했다. 차로 가기에도 복잡하고 걸어서 가기에도 쉽지가 않다. 생각했던 방향으로 가다가 도로가 끝이 나서 걸어가다가 멀리서 석탑처럼 보이는 지형을 발견했다. 

언덕을 올라오니 후미리 석탑이 드디어 드러났다. 옆에는 조선 후기의 유력 양반가의 무덤처럼 보이는 묘가 있고 문인석과 석등 등 갖추어야 할 것은 모두 가지고 있었다. 후미리 석탑 같은 형태는 보통 사찰의 중심에 자리하기에 사찰이 있었을 것이라고만 추정되고 있다. 

원래 5층 석탑이었으나 현재는 기단부 1층과 탑신부 1층만 남아 있는데 주변을 살펴보면 기반이 만들어져 있는 것이 보인다. 돌로 된 기반 위에 석탑이 튼튼하게 버티고 있다. 지대석은 땅 속에 묻혀 있어 확인할 수 없고, 기단 면석은 4매의 판석으로 결구하여 조립되어 있었다. 

 크기는 기단부가 사방 모두 12㎝이며 현재의 높이는 210㎝라고 하는데 실제 그 정도 크기라고는 보이지 않는다. 훼양(毁壤)된 석탑은 하부 이층만 존재하는데 기부종횡각사척(基部縱橫各四尺)”이라고 쓰여 있고 탑상골 절터라는 지명도 쓰여 있다. 즉 이곳에 절이 있던 것으로 알 수 있다. 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후미리 1064-18이라고 입력하고 와도 찾으려면 쉽지 않다. 

옆에 묘와 비가 세워져 있는데 세운 지 얼마 안 되어서 비교적 최근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후미리 석탑은 표현양식 등을 볼 때 고려 전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곳은 절터라기보다는 특정 가문의 묘역처럼 보이기도 한다. 옆에 농장이 있고 그 옆에는 묘역으로 수많은 묘가 조성이 되어 있다. 원래 석탑은 석조 탑파(石造塔婆)의 줄임말이다. 후미리 석탑처럼  재료로는 화강암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안산암이나 점판암을 사용하기도 한다. 목탑을 주로 세우다가 석탑을 세운 것은 백제가 열었는데 7세기 초반에 이르러 석재로 목탑을 모방하여 탑을 건립함으로써 석탑의 시원을 이루게 되었다. 백제계의 석탑은 화강암만을 사용하여 목탑계 양식을 따른 반면, 신라는 화강암을 혼합하였으되 안산암을 주재료로 삼아 전탑계 양식을 모범으로 삼았다. 불교의 교세가 고려에 꽃 피우면서  불교적인 조영(造營) 작업도 거의 고려 일대를 통하여 국가적 혹은 개인적으로 되었으며, 그 결과 오늘날 많은 석탑이 남아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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