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벼루

보령 남포벼루를 찾아

령벼루는 아주 오래전부터 선비들의 사랑을 받던 벼루로 오랜 시간 글을 쓸 수 있도록 도와주는 질 좋은 벼루다. 특히 보령 남포에는 돌이 많아 오래전부터 돌을 가공하는 기술이 발달했다. 남포벼루는 회청색이 나는 돌로 매우 단단하고, 은사가 적당히 배합되어 물이 스미지 않고 먹이 잘 갈리며 먹물이 마르지 않아 오래도록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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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 남포벼루가 있는 곳은 평정 마을로 한국 벼루 본고장이라고 쓰여 있어서 남포오석을 만들고 있는 명장이 있음을 알리고 있다. 1987년 12월 충남도 무형문화재 제6호로 지정된 보령 남포벼루 제작 기법은 남포벼루의 명장인 서암 김진한 씨가 3대째 기법을 전수받았다고 하는데 이날 가서 물어보니 아들은 충남도청에서 문화재 관리 담당으로 일하고 있어서 가업은 생각해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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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옆으로는 현재 한참 도로라 개설 중이라서 이곳으로 접근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위치를 알아야 갈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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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포오석을 자세히 바라본다. 보면 알겠지만 오석이라고 하는 검은색 돌은 단단하고 조직이 치밀해 비석을 비롯해 벼루·상석 등의 재료로 널리 쓰인다. 그냥 바로 벼루로 써도 될 만 큰 품질이 좋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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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는 전시관을 운영하고 있는데 김진한 명장은 60년 이상 최상품의 남포벼루를 만들어 오며 남포벼루의 우수성을 국내뿐만 아니라 국외에도 알리고 있어 2009년에는 자랑스러운 충남인상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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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장으로 들어가 보는 것이 오래간만이다. 지금은 남포 오석이 많이 나오지 않아서 생산량이 많이 줄었지만 아직도 전국 수요의 80% 이상을 남포에서 제작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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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작업기계로 잘라내면 남포오석은 이렇게 1차 작업이 마무리가 된다. 오래전부터 보령의 남포오석은 예술품 등에 활용이 되었는데 보령 남포면에서 생산된 남포벼루로서 백제 등 고대 건물지에서 발견된 와당의 연화문을 만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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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서 한 사람의 생은 짧지만 대를 이어 내려오는 가치는 영원하다. 그런 가치를 가진 것 중에 무형문화재도 포함이 된다. 남포벼루를 만드는 장인이며 유형문화재 역시 사람이 매개체이며 무형문화재는 사람임과 동시에 동시대의 문화를 담고 있다. 문화는 자연발생적 현상으로 인간은 문화를 가진 종류의 생물체로 진화를 해왔다. 남포벼루는 손 하나하나 가고 오래도록 시간과 정성을 들여야만 만들 수 있는 선조의 흔적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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