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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Dec 11. 2018

중악단(中嶽壇)

눈 내린 날 공주 신원사 풍경

제사를 지내는 일은 지금도 한국에서는 매우 중요한 일중 하나다. 천주교 탄압 당시 제사를 지내는 것으로 인해 사형당하는 사람이 상당히 많았을 정도로 우리의 문화와 서구문화의 충돌은 상당히 컸다. 들어올 당시 천주교는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을 다른 신을 모시는 것이라고 보았다. 한국에서 부모와 조부모, 증조부모, 고조부모는 신이라기보다는 자신의 뿌리를 찾아가는 그 길의 연장선상에 있다. 솔직히 믿는 것에 대한 것은 정답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럼 믿는 것이 무엇인지 제사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는 조선시대 백성들의 정점에 서 있었다는 왕실의 제사를 지냈던 곳 중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공주 신원사의 중악단을 찾아가 보았다. 태조 이성계가 이곳에 도읍을 정하려고 했을 만큼 그 기운이 강한 곳이기에 공주 계룡산 중악단(公州 鷄龍山 中嶽壇)은 계룡 산신에게 제사 지내기 위해 마련한 조선시대의 건축물로 지어졌다. 

눈이 내리면 이렇게 풍광이 좋아지는 신원사다. 계룡산을 대표하는 사찰이 동학사와 갑사이긴 하지만 그 기운을 빌 때는 신원사로 오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고 한다. 

상시 푸르름을 가지고 있는 나무들이 주변에 많이 심어져 있다. 인도에서 시작된 불교는 한반도에 들어오면서 우리의 고유 신앙과 결합이 되었다. 한반도의 산신제는 예부터 내려온 산악 신앙인 바, 현재 상악단과 하악단은 소실되었고 이 제단만 유일하게 남아 있게 된다. 

왜 기도를 올리게 되는 것일까. 사람마다 그 목적은 제각각일 것이다. 종교적인 관점으로 인해 단적으로 말하기는 쉽지는 않지만 결국 자신이 원하는 바 혹은 가려는 방향에 걸림돌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제사를 지내고 기도를 올리는 것일 것이다. 

신원사의 중악단은 충청남도 공주시 신원사 내에 있다. 1973년 12월 24일 충청남도의 유형문화재 제7호로 지정되었다가, 1999년 3월 2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1293호로 승격되었다. 원래 제단의 명칭은 계룡 산신 제단이라는 뜻에서 계룡단이라고 하였으나, 고종 때 묘향산과 지리산 산신각을 각각 상악단과 하악단이라 하고 두 산 사이에 있는 계룡산 산신각을 중악단이라고 불리게 된다. 

중악단은 1651년(효종 2년)에 철거되었다가 1879년(고종 16년)에 명성왕후가 다시 건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궁궐 양식을 그대로 축소하여 만든 건물의 안에는 산신도가 모셔져 있다. 

걸어 다니다가 보니 제사를 지내는 이유라던가 신원사에 대한 생각보다는 춥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선이라고 하면 국가였으니 그런 국가에서 바라는 것을 위해 조성했던 제사단은 무엇을 빌고 싶었을까. 살짝 궁금해졌다. 

한반도에서 내려오는 산신제는 민족정기의 고양과 모든 백성의 합일 및 번영을 기원하던 팔관회를 후에 기우제·산신제라 부르게 된 것이다.

눈 내린 날 신원사의 절경은 그냥 하얀색과 검은색의 조화였다. 일반 사찰의 형태라기보다는 조금 더 소박한 느낌이지만 중악단이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독특한 가치를 가진 곳이다. 

이곳에서 졸졸 흘러내려오는 약수를 한잔 마셔본다. 역시 사찰에 오면 약수를 마셔야 무언가 이곳을 왔다는 증거를 몸에 남기는 느낌이다. 

최근 신원사에는 일주문이 없었는데 지금 일주문 공사가 한참 진행 중이었다. 일직선상의 두 기둥 위에 지붕을 얹는 독특한 형식인 일주문은 기둥이 한 줄로 되어 있는 데서 유래된 것이다.  일심(一心)을 상징하는 일주문은 신성한 가람에 들어서기 전에 세속의 번뇌를 불법의 청량수로 말끔히 씻고 일심으로 진리의 세계로 향하라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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