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블레스가 해야 될 일
더 포스트라는 영화를 보면 모든 분야에서 노블레스라고 불릴만한 사람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보게 된다. 자유주의를 수호하는 국가이면서 전 세계의 경찰국가임을 자랑하며 공권력이 강하다고 하는 나라 미국은 문제도 있지만 그 문제를 보완할만한 언론인의 정신이 살아 있는 나라다. 국가가 잘못한 것은 잘못했다고 할 수 있는 언론과 그 현실을 받아들이는 미국인들을 보면 한국과 상당히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유주의는 방임이라던가 권력자에 의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패권국가 미국이 명분이 부족한 베트남전에 참전을 하고 돈과 젊은 이들의 생명이 의미 없이 소진되어 가던 1971년 '펜타곤 페이퍼'가 만들어진다. 전쟁을 정당화시키는 미국 정부의 조작이 현실로 드러난 것이다. 한국에서 이런 페이퍼가 있다면 밖으로 나올지 궁금하기도 하다. 뉴욕 타임즈에 의해 처음 세상에 밝혀지고 워싱턴포스트가 미국 전역에 그 사실을 알린다. 문제가 있을 때 모든 언론이 이슈화시키는 것이 미국의 특징이다.
미국 역시 여성의 권리가 제약되던 시대가 있었다. 영화 속에서 워싱턴 포스트지의 회장 캐서린은 남자들이 주도하는 언론사회에서 수많은 제약을 받게 된다. 언론이 권력의 눈치를 보고 권력에 의해 입맛에 맞는 것을 거짓으로 보여주는 것을 우리는 지난 9년 동안 여실히 보아왔다. 진실은 중요치 않고 권력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언론은 나팔수일 뿐이다. 당시 미국도 닉슨 대통령은 언론을 권력을 동원해서 위협한다. 펜타곤 페이퍼를 워싱턴 포스트에 실어야 할지 결정해야 하는 그녀는 무언의 압박 속에 민주주의와 언론의 자유라는 위대한 가치를 지켜내기 위해 발행하기로 결정한다.
정권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지적하기 위해 다른 영화를 찍던 스티븐 스필버그는 이 영화를 찍기로 생각하고 미국에서 영향력 있는 배우들을 끌어 모은다. 배우들 역시 언론의 진정한 역할이 무엇인지 보여주어야 된다는 생각에 연기를 했다고 한다. 지금도 사회에서 규정해버린 약자들에게 신경을 쓰는 사람은 없다. 누군가에 의해 죽음을 당할 때만 잠시 신경을 써주는 언론, 약자를 논쟁의 소모 대상으로만 사용하는 언론들이 즐비한 세상에서 우리는 노블레스가 가야 할 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