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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Jan 05. 2019

종소리

진천 종박물관

문학을 좋아해서 그런지 종이라고 하면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라는 작품이 먼저 연상된다. 그러고 보니 종은 결국 어떤 이를 위해 혹은 사람들을 위해 울리기 위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가. 보통 대부분은 치기 위한 종을 만든다. 그 목적에 있어서 국난을 극복한다 혹은 민생을 위하기도 하고 사찰을 지으면서 만들기도 하는 등 목적은 있지만 소리를 내기 위한 종을 만드는 것은 분명하다. 

올해부터는 진천의 구석구석도 살펴볼 듯하다. 진천의 전통시장과 농다리를 가본 기억은 있지만 다른 곳은 가보지 않았는데 처음 가보기로 생각한 곳은 바로 진천 종박물관이다. 우리 역사에서 종은 민족문화의 소산물로서 종이라 일컬을 때에는 범종을 의미한다. 

“무릇 쇠로 만든 악기가 여섯이 있는데 모두 종에 속한다. 종(鐘)·순(錞)·탁(鐲)·박(鎛)·요(鐃)·탁(鐸) 등이 그것이다.”  - 고금악록 (古今樂錄)


보통 종이라는 것은 큰 범종을 연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종의 출발점은 방울에서 시작하였다. 큰 방울이 출토된 대전 땅은 후에 마한의 한 지역이었고 큰 밭이라는 대전에서 제사가 행하여지고 방울을 흔들면서 춤추는 잔치와 굿이 벌어졌던 것이다. 악기가 사람과 귀신을 흥분시키고 움직이게 하며, 나아가서는 자연현상까지 변화하게 하는 성구(聖具)라는 믿음은 우리 민족에서 일찍이 발달했다. 흔히 굿이라고 불리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보통 사찰에 가면 일반인들이 종을 쳐보는 것은 쉽지 않지만 이곳에서는 직접 종을 쳐볼 수 있다. 종소리의 울림이 심장을 흔들 만큼 웅장하면서 그 파동이 저 깊은 속까지 퍼져가는 느낌이 든다. 

이제 본격적으로 종을 만나기 위해 종박물관 안쪽으로 들어가 본다. 방울이 무교의 상징물이라면 범종은 불교의 상징물이다. 방울은 씨족사회의 산물이지만 범종은 국가의 형태를 가졌을 때 왕권 국가의 산물이다. 상징적 의미도 훨씬 심원하고 철학적인 대상이 종이다. 

청동으로 만든 종에서 나오는  종명(鐘銘)은 지도나 대음은 지극히 높고 깊어서 깨달을 수도 들을 수도 없다고 전제하면서도 종소리를 통하면 깨달을 수 있고 들을 수 있다고 하고 있다.  종을 만들어서 부처님의 진리나 자비를 담아서 온 누리에 퍼지게도 하고, 역사에 기록될 만한 대왕(大王)의 공덕과 위업을 종에다 담기도 했다. 

성덕대왕신종의 명문에는 범종에 대한 기원이 나온다. 그 기원은 불로인 인도에서는 카나시카왕 때부터이고, 당향인 중국에서는 고연이 시초였다. 속은 텅 비었으나 능히 울려 퍼져서 그 메아리는 다함이 없으며 무거워서 굴리기 어려우나 그 몸체는 구겨지지 않는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해와 달이 밤과 낮에 서로 빛을 빌리며, 음과 양이 서로 그 기를 조화하여 바람은 온화하고 하늘은 맑았다. 마침내 신종이 완성되니 그 모양은 마치 산과 같이 우뚝하고 소리는 용음과 같았다. 

종의 종류도 참 다양하다. 전국에 있는 유명하다는 범종의 소리들을 접해볼 수 있다. 통일신라 시대에 만들어졌을 고묘지 소장종은 일본 중요문화재로 지정이 되어 있으며 일본 시네마현 고묘지에 소장이 되어 있다. 종신이 전체적으로 긴데 주악 천인상과 지물, 종의 세장한 형태로 보아 보기 드문 9세기 종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한다. 이곳에 있는 종은 복원된 것이다. 

목탁과 종소리를 사찰에서 같이 연결되어 소리를 낸다.


"새벽녘 사찰은 고요한 세상을 깨울 준비에 분주하다. 지옥의 중생과 만물을 깨우는 대종 소리를 시작으로 목어, 운판, 법고를 울려 수중과 하늘, 땅의 모든 생물과 우주 삼라만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새로운 시작을 알린다." - 사찰 장식의 미와 선

운판(하늘의 소리로 날개를 펴다), 법고(당의 모든 생물을 제도하다), 목어(물, 잠들지 않은 수행의 길로 인도하다), 범종(만물을 깨워 세상을 밝히다)은 사찰의 순환이며 정신이다. 세계에도 다양한 종이 있는데 종의 가장 기본적이고 폭넓은 용도는 의식의 중요한 시점을 알리거나 기쁨, 경고, 슬픔을 알리는 일이었다. 진천 종 박물관에는 중국, 일본, 태국, 미얀마, 티베트, 스위스 종으로 구분되며 스위스 종을 제외한 아시아 종은 대부분 기념종으로 제작된 것이라고 한다. 

종은 상당히 많은 사람들의 인력이 필요하다. 1116년 송나라에서 들어온 편종의 음역은 12율 4청성에 이르며 음색이 웅장하고 날카로운 금속성을 내는데 국악기 중 금부에 속하는 유율 타악기 편경과 함께 문묘 제례악 등에 주로 사용되었다. 

종을 만드는 방법은 밀랍(벌집)과 소기름을 적당히 배합하여 만든 말초를 사용하는 밀랍주물법과 자문관을 사용하여 외형에 문양을 찍어 새기는 방법으로 철제 범종을 만드는 사형주물법이 있다. 사형주물법은 일본에서 현재까지도 계속 사용하고 있는 방법이다. 

시대마다 한국범종에는 불교를 상징하는 많은 문양이 새겨졌는데 시대별로 보면 통일신라시대에는 주로 하늘에서 나는 비천상들이 악기를 연주하며 구름을 타고 내려오는 모습이 드러나며 범종 소리를 '천상에서 연주하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고려시대에는 악기를 연주하는 비천상의 모습도 있지만 부처님이 앉아 계시는 모습도 많다. 조선시대에는 기도를 하고 있는 보살의 모습이 보이고, 범자가 함께 새겨져 있다. 사찰을 가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옴마니반메훔(산스크리트어로 om mani padme hum)' 의 여섯 자를 새겨 넣는데 이 주문을 관세음보살의 자비에 의해 번뇌와 죄악이 소멸되고 온갖 지혜와 공덕을 갖추게 된다고 한다. 

이곳은 생활 속에서 만나는 종들이 전시되나 곳이다. 꼭지를 눌러 '땡'소리를 내는 탁상종, 국가의 역사적인 사건이나 승전 등을 기념하는 기념종, 동물들을 보호하기 위해 동물의 몸에 다는 가축종, 시계가 흔치 않았을 때 시간을 알려주거나 사람의 움직임을 지휘하거나 통제하는 도구로 활용되던 알림종, 대문종, 핸드벨, 종교종등으로 구분이 된다. 

종에는 그렇게 관심이 많지 않았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종의 디테일도 상당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종은 집에 놔두어도 멋진 분위기를 연출할 것 같다. 


정도전(鄭道傳)은 또 “음악이란 성정(性情)의 바름에서 근본 한다. "

박물관을 돌아보고 내려오면 종으로 만든 기념품을 구입하는 기념품샵을 둘러볼 수 있다. 가격대가 생각보다 상당한 편이다. 종은 음악과도 연관성이 높다. 음악을 들려줌으로써 사람들의 성정을 순수하게 하고, 성정이 순수하게 되면 도덕이 순화되고, 도덕이 순화되면 정치가 잘될 수 있다는 지극히 효용적인 사상에서 음악은 활용이 되었다. 종은 누군가를 위해 울리며 그 소망을 들어주기를 기원하는 역할을 한다. 


“나는 믿음을 위해 1년 동안 싸워 왔다. 우리가 여기서 이기면 언제까지나 이길 수 있을 것이다. 이 세상은 훌륭한 것이며, 그것을 위해 싸울 만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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